문화 동구 이름 드높인 ‘달빛걸음’

김성환(광주 동구청장)

지방자치일보 jebo@jijace.com
2017년 06월 20일(화) 22:00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이 구절은 조선 후기 문장가 저암(著菴) 유한준의 글을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재인용하면서 세인들의 마음에 명언으로 새겨졌다.
유한준의 원문은 “알게 되면 곧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되게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니 그것은 한갓 쌓아두는 것이 아니다.”라는 구절로 당대의 수장가였던 김광국의 화첩 ‘석농화원(石農畵苑)’에 부친 발문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문화재 수집의 열정을 칭송한 원문보다 유홍준 교수의 일반화된 응용구가 더 유명해진 셈이 됐으나 어찌됐든 무언가를 사랑함에 있어서의 전제는 앎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앎과 사랑은 대상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뜻한다. 겉의 화려함에 취하기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에 귀 기울일 때 진정으로 대상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다.
지난 9일과 10일 이틀간 광주 동구에서는 ‘문화재 야행 달빛걸음’ 행사가 열렸다. 문화재청이 다양한 문화재의 정취를 밤에도 느껴보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전국지자체를 대상으로 공모하는 문화재 야행 행사를 광주에서는 처음으로 개최한 것이다. 우리 동구는 덕수궁을 중심으로 한 서울 중구의 ‘정동야행’, 임시수도정부청사를 중심으로 열리는 ‘피란수도 부산야행’ 등 풍부한 문화재 인프라를 갖춘 타 지자체보다 규모는 작지만 내용 면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을 알찬 프로그램들로 계획을 채워 공모에 선정될 수 있었다.
네 가지 테마로 꾸며진 동구의 ‘달빛걸음’ 중 첫 번째는 옛 전남도청과 5·18민주광장 등 5·18역사공간에서 그날의 기억을 상황극으로 환기시키는 ‘오월의 봄날’ 공연이 열려 지나는 이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오월 테마는 이외에도 샌드아트 ‘광주다움’, 영상 ‘그해 오월’ 등 다양한 융합장르를 선보이며 가슴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다.
두 번째로 호남 예술가들의 사랑방인 예술의거리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남종화의 대가 의재(毅齋) 허백련, 근대서양화단의 거목 오지호, 격동기의 보헤미안 화가 양수아의 예술혼을 느껴보는 시대거리극 ‘화가들의 귀환’이 열려 시민들과 근대 광주 예술가들이 조우하는 이색적인 시공체험을 제공했다. 세 번째로 지은 지 160년이 넘은 근대전통가옥 오가헌에서는 역사의 시간과 마주하는 ‘시간이 머문 집’ 공연이 열려 우리 건축의 아름다움과 우리 가락이 빚어내는 절묘한 하모니에 많은 이들이 큰 감동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광주읍성 유허, 지산동오층석탑 등 우리 문화재를 달빛 아래서 감상하는 ‘찾아가는 달빛걸음’ 야행투어를 통해 문화해설사가 일행과 동행하며 낮과는 또 다른 밤 문화재의 은은한 아취(雅趣)를 느껴보는 기회를 가졌다.
모두 3만여 명이 참여한 이번 ‘달빛걸음’은 여러 성과 중에서도 동구가 가진 근대문화유산을 구역별로 나누어 체계적인 관람동선을 구성해 실행한 최초의 문화관광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그것도 낮이 아닌 밤 시간을 이용해 시민들과 방문객들에게 지역 내 문화유산과 그 주변의 문화콘텐츠를 하나로 묶어 특화된 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색다른 시각에서 지역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해 격찬을 받았다.
여기에 동구가 자랑하는 야간관광명소인 남광주밤기차야시장과 대인야술야시장을 잇는 야시(夜市), 한옥게스트하우스·증심사템플스테이문화관에서 남도의 역사와 자연을 만나는 야숙(野宿)체험 등을 통해 남도의 따뜻한 정과 웅숭깊은 매력을 경험하고 관광소득 증대,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이바지할 수 있도록 지역의 문화자원과 적극적인 연계를 시도한 것도 큰 성과다.
이번 ‘달빛걸음’은 또 하드웨어 차원의 물리적 도시재생에서 벗어나 지역 문화재를 활용한 문화 인적자원인 휴먼웨어, 콘텐츠와 프로그램의 소프트웨어적인 도시재생의 본보기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사람이 빠져나가 활기를 잃어버린 원도심에 다시 생기가 돌게 하기 위해서는 도시를 파괴하고 새로 짓는 ‘빅 프로젝트’ 위주의 물리적인 개발보다 도시가 가진 역사문화유산을 활용해 사람을 불러 모으고 이를 매개로 와해된 공동체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동구는 지난 이틀간의 ‘달빛걸음’ 행사 외에도 앞으로 7월부터 11월까지 5차례에 걸쳐 지역민을 찾아가는 ‘달빛걸음’ 행사를 추가로 진행할 예정이다. 지역사회와 문화재가 서로 상생하고 공존하는 좋은 시도였던 이번 행사는 안으로는 지역 주민들에게 우리 문화재의 자긍심과 애정을 드높이고 밖으로는 광주 동구가 자랑해마지않는 문화유산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유홍준 교수의 말처럼 더 많은 사람들이 동구의 문화재를 알고 더 깊이 느끼게 된 ‘달빛걸음’이 문화도시 동구로 도약하는 의미 있는 시작점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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