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정부 인권외교 포기, 5·18 광주학살 초래”

5·18재단 리퍼트 전 주미대사 기증 미국 정부 문서 분석 결과

강용운 yongpresser@jijace.com
2017년 06월 07일(수) 22:00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가 지난 1월 18일 광주 서구 쌍촌동 5·18기념공원을 찾아 안내를 맡은 김양래 5·18기념재단 상임이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정희 암살 후 美 정치적 공백 메우기위해 전두환 지원 결정”

1980년 5월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 행정부의 인권외교 포기가 광주학살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7일 5·18기념재단은 지난 1월18일 마크 리퍼트 전 주한 미국대사가 재단에 기증한 1980년 당시 미국 정부 문서 89건의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재단 비상임연구원 최용주 박사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도덕주의와 인권 중시 외교정책을 펼쳤고 이 때문에 임기 내내 박정희 정부와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다. 카터는 1979년 6월 방한해 박정희 정권에 정치범 석방과 긴급조치 9호 폐기 등을 요구하기도 했다.
카터 정부의 인권 중시 외교정책은 10·26 이후 대한민국의 정치적 혼란기를 기점으로 ‘안보’와 국내질서 ‘안정’을 중심으로 전환됐다.
최 연구원은 이 같은 정책적 전환은 당시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의 한국정치 발전에 대한 회의적 시각, 이란 팔레비 왕조의 몰락과 과격파 학생들에 의한 이란대사관 인질 위기가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이란의 권위주의 정권의 몰락이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반미 정서의 확산과 대사관 인질 위기로 이어졌고, 같은 맥락에서 10·26 이후 한국이 ‘또 다른 이란’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최 연구원은 “미국은 한국의 정치발전보다 강력한 힘을 가진 권위주의 세력이 등장해 박정희 암살 후 정치적 공백을 메우고 질서를 안정시켜주기를 바랐다”며 “이런 목적으로 전두환의 신군부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은 5·18을 민주주의와 정치발전을 염원하는 한국 시민사회의 정당한 사회운동으로 보지 않았다. 이란처럼 시급히 안정돼야 할 사회적 혼란과 폭동으로 인지했다”며 “이러한 인식이 결국 신군부의 군대동원에 의한 광주학살을 승인 또는 묵인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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