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춘추] 영광과 찬양의 ‘성탄일 단상’

나일환 시인·한국 사회공헌 시민연합 중앙의장

지방자치일보 jebo@jijace.com
2017년 12월 26일(화) 22:00


성탄절을 맞는 아침의 하늘은 무척 청명하고 엄숙했다. 성탄절은 사랑을 받고 나누는 날이요, 사랑을 하는 날이다. 아기 예수님이 사랑을 주러 이 세상에 인간의 몸으로 오신 날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바로 사랑이다. 예수님의 사랑은 인간들에게 죄를 사해주기 위해서 오심이요, 그 사랑을 받은 우리는 서로 나누고 베풀기 위해서 그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그 사랑을 혼자만 받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예수님의 사랑은 혼자만 받으려는 사랑은 멀리하신다. 인성이 없는 현 사회는 아집과 독선 그리고 불의를 정의라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사람들을 예수님은 불쌍하게 생각 할 것이다. 그리고 벌하실 것이다. 예수님의 진정한 사랑을 우리는 알아야한다. 예수님은 그 수많은 고통을 받으며 우리 죄인들을 구하시러 자기를 희생했다. 기독인들은 부활절과 성탄절을 매우 큰 축일로 여긴다. 이는 바로 자기희생을 통한 사랑을 말함이라 생각한다.
필자는 어린 시절 참 진리가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많은 종교를 섭렵하려 했다. 그리고 찾아 다녔다. 무엇이 참 종교인가? 는 화두를 놓고 고민을 많이 했었다. 진리가 바로 종교라는 생각에서였고 참 진리를 찾기 위해서는 수많은 종교들 중에서 참 종교를 찾아야만했다. 그리고 방황 했었다. 인간은 왜 태어났는가? 인간의 진정한 모습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은? 등등 수없는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하면서 젊음의 긴 시간을 낭비 했었다. 그러나 답을 얻지 못하고 말았다. 나와 함께 했던 친구들 중에 한 친구는 지금까지 불교에 귀의하고 기독교 목회자로 성직자의 생활을 하는 친구도 있다. 인간이라는 단어 앞에 자유스럽고 싶었다. 성탄일을 맞이하면서 새삼 젊었을 때의 기억들을 회상하며 지금 글을 쓰면서도 참으로 아이러니한 느낌이 든다.
크게 사랑과 자비라는 두 단어를 두고 사랑과 자비는 어떤 차이점을 갖고 있을까? 기독교와 불교의 진리는 바로 사랑과 자비다. 인간은 수없이 죄를 짓고 산다. 그리고 후회하고 반성하고 회계하며 다시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바란다. 그때 종교를 찾는다. 외로움에 지친 영혼들도, 힘들고 서러운 사람들도, 진정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찾는 장소가 바로 교회요, 사찰이다. 교회와 사찰은 사랑과 자비가 아니다. 교회 안에서 그리고 절 안에서 사람들이 모여 성직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가슴에 세기며 행하기를 다짐하고 명세하며 자기가 지은 죄를 회계하며 기도하는 성스러운 장소다. 교회나 절에 열심히 다닌다고 해서 복을 주는 것이 아니다. 학생이 책가방만 들고 학업에 열중하지 않고 학교에 왔다 갔다 하는 것과 같다. 진정한 마음을 갖고 날마다 화계하면서 진리를 가슴에 새기며 행하면서 성스러운 교회나 사찰에 다녀야한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내 마음속에 살아있다 고 필자는 생각한다. 혼자 있을 때나 여럿이 함께 있거나 항상 어디에나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행하는 자들이 복을 받는다.
오늘은 성탄절이다. 성탄절은 아기 예수님이 오신 날이기에 필자는 사랑이 우리에게 오는 귀한 날이라 생각한다. 너무나 혼탁한 세상에서, 인성이 바닥에 깔려있어 오직 나밖에 모르는 사회에서, 돈이나 권력이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망극의 현실에서 오늘 성탄절은 무척 의미가 있고 영광과 축복의 날인 것이다. 예수님은 바로 사랑이기에 사랑으로 이 험한 세상에 오셨으니 우리 인간들은 그 사랑을 받아먹고 베풀어야한다. 사랑은 바로 자비인 것이다. 필자는 작은 단체를 이끌어왔다.
그런데 그 단체의 일부 회원들과 제명당한 몇 분들이 많은 회원들을 무시하고 단체 행사에서 불법 난동을 벌였다. 그중에는 교회 지도층도 있고 목회자도 있었다. 그런데 법도 원칙도 상식도 없는 행동과 언어에 심한 불편함을 갖었다. 인내라는 단어. 참음이라는 단어를 통해 나를 실험했다. 대의명분. 원칙과 상식이라는 단어 앞에 참음이라는 단어가 적용이 되는가? 단체는 회원으로 구성되고 회원은 먼저 의무를 다하고 권리도 주장해야한다. 의무는 행하지 않고 권리만을 앞세운다면 그 조직은 의미가 없다. 조직의 화합은 의무를 다하는 회원들이 모여 이뤄 내야한다. 의무를 다하지 않고 권리만을 내 새우는 회원들의 화합은 모래위에 성을 짓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원칙도 없고 상식이 없는 행동에 대한 부당함을 맞서려하는 마음을 달래기가 무척 힘들었다. 성탄절에 다시 한 번 그날의 일들을 생각하면서 참음이라는 단어 앞에 감사. 사랑이라는 단어를 동행 시킨다. 사랑을 베푼다는 것은 나를 희생하며 나누는 것이다. 그 사랑이 바로 참사랑이다. 사랑은 희망을 주고 기회를 준다. 다시금 새롭게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사랑 안에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자비의 마음 또한 사랑의 마음과 동일하지 않겠는가? 성탄절은 사람들이 자신을 반성하고 회계하는 날이기도 하다. 베풀기 위해서는 자신을 비워야하기 때문이다. 축복의 날에 새로운 나를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악한 마음과 행동들을 바로 해야 한다.
정유년 성탄절은 호남지방에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된다는 일기예보를 접하고 무척 흥분했다. 그런데 기대하고는 먼 바람은 차가우나 맑고 청명한 날 이였다. 하얀 눈으로 험한 세상을 덮어버렸으면 하는 기대감이 무너지고 하늘은 담담하게 맑음을 선사했다. 이 또한 마음을 고요하게 청정히 하라는 뜻이라 여기고 성탄절을 보냈다. 아기 예수님오신 성탄절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화두로 온 세상을 비춰보는 시간이 마냥 즐거웠으나 한편으로는 채워지지 않은 참 진리의 샘물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하늘을 뒤로하고 흘러가는 구름은 무심함 그 자체다. 세상이야 어찌 되든 흘러가는 모습이 참으로 얄밉기도 하고 고요하기도 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을 바라보면서 오직 마음속에만 간직하고 말없이 흘러가는 모습에 부끄러움이 앞선다. 오늘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날이고 그 영광을 드리기 위해서는 사랑을 받고 베푸는 성탄절이다. 사람들의 무관심속에서 짐승들이 거처하는 마구간에서 조용히 탄생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아기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영광과 찬양을 드리는 성숙한 신앙인으로 거듭 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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