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거리 좁히는 ‘맥주 사랑’

고운석(시인)

지방자치일보 jebo@jijace.com
2017년 11월 23일(목) 22:00


인류가 보리와 그 밖의 곡식들을 재배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발효법이 나타났다고 해도 아마 과언은 아닐 것이다. 신석기 시대 말부터 사람들은 곡물을 발효시켜 맛 좋은 음료를 만들어 마셨던 것으로 추정된다.
어쨌든 아주 오랜 옛날부터 메소포타미아, 칼데아, 앗시리아 등지에 살던 사람들이 발효음료를 마셨다는 흔적이 남아있다. 이집트에서도 발효 음료를 흔하게 찾아볼 수 있었고 그들은 신에게 올리기도 했다고 전한다. 그 후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 때 발효 음료는 널리 보급되었다.
한편 로마가 골 지방을 침략하기 400여 년 전부터 골로아인들도 보리, 밀, 호밀싹 등을 재료로 해서 만들어진 음료를 마시곤 했다. 그들은 이 음료를 ‘세르보아즈’라 불렀는데 풍요의 여신 ‘케레스’에게 감사드리며 붙인 이름이다. 로마인들이 골 지방을 침략하면서 가지고 들어온 포도나 무와 포도주를 골로아인들은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 후 유럽에 십자군이 등장하면서 향신료가 널리 보급되었다.
사람들은 세르보아즈에 고추, 노간주나무열매, 계피 월계수 등을 섞으면 독특한 맛이 난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북방 민족들은 세르보아즈에 홉(hop)을 섞어 마셨다. 이것이 맥주의 탄생 배경이다.
맥주 제조 과정은 수백년이 흐르면서 개량되었으나 근본적인 원칙만은 오늘날까지 변함없이 지켜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맥주가 생산되고 있는데 지금은 중국과 일본 등의 맥주를 수입 해오는 바람에 경쟁이 치열하다.
중국은 칭다오 맥주가 유명한데, 산둥반도의 칭다오(靑馬)는 ‘중국 속 독일’로 불린다. 붉은 기와 지붕들이 독일의 여느 도시를 연상케 한다. 중국답지 않은 풍광이지만 그 이면엔 뼈아픈 역사가 숨어있다. 1897년 독일 선교사가 중국 의화단에 살해된 것을 빌미로 독일 제국 함대가 칭다오 내해(內海)인 자오저우만을 점령했다.
‘종이 호랑이’ 중국은 화친조건으로 칭다오를 99년간 내줬다. 독일은 작은 어촌이던 칭다오에 동양 함대 기지를 건설했다.
이에 자극 받은 러시아가 남진해 러·일 전쟁이 터졌고, 5년 뒤 조선(대한민국)은 나라를 잃었다.
홍콩(영국), 마카오(포르투칼)와 달리 독일의 칭다오 지배는 길지 못했다. 1914년 1차 대전때 일본이 공격해 점령해 버렸다.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서 패전국 독일의 이권이 일본에 넘어가면서 칭다오도 일본 지배로 편입됐다. 이것이 ‘중국판 3·1운동’인 5·4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독일이 17년간 지배하며 남긴 유산이 무역항과 맥주다. 맥주 종주국답게 독일인들은 1903년 독일서 맥주 설비를 들여와 물 좋기로 유명한 동쪽 라오산광천수로 칭다오 맥주를 만들었다. 1906년엔 세계맥주박람회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단숨에 유명해졌다. 칭다오 맥주는 단일 브랜드론 중국 저가 스노(雪花) 맥주에 이어 세계2위지만, 해외 인지도는 압도적이다.
칭다오 국제맥주축제는 독일 옥토버베스트, 일본 삿포로 맥주 추구제와 더불어 3대 축제로 떠올랐다. 중국은 1인당 맥주 소비량이 많진 않지만 생산량과 소비량 모두 1위다. 세계 톱 10 브랜드 중 스노, 칭다오, 옌친(6위), 하얼빈(9위) 등 중국산이 4개나 된다.
한국에 칭다오 맥주가 들어온 것은 밀러(미국), 네덜란드 뿐이던 1990년이다. 꾸준히 성장하다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 ‘양꼬치엔 칭다오’가 유행가처럼 번지며 소비가 급증했다.
이마트의 지난 1~8월 칭다오 맥주 판매액이 전년 동기보다 28.8%나 급증했다고 한다. 한때 수입 맥주 중 1위에 올랐고 올해 누적 매출로도 4위다.
칭다오를 비롯한 중국산 맥주 수입량도 최근 6년 새 7배 이상 늘었다. 때문에 일각에선 중국의 사드 보복에 대항해 중국산 불매 운동을 벌이자는 여론도 있다.
그러나 이미 ‘중류(中流)’라고 부를 만큼 양꼬치부터 드론까지 중국산에 꽂힌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중국인의 편협한 국수주의는 지탄 받을 만하다.
하지만 국가간 갈등이 고조돼도 문화·소비 트랜드 변화를 억지로 막을 순 없다. 젊은층 소비 기준은 국적보다 ‘가성비’다.
한국인들이 칭다오와 아사히 맥주를 마시고, 중국·일본인이 한류를 즐길수록 미래의 3국 간 거리는 좁혀질 것이다. 싫다고 멀리 이사를 가면 내가 외롭고 고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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