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치춘추] 제주의 하늘은 높고 푸르기만 한데 나일환 시인·한국 사회공헌 시민연합 중앙의장 지방자치일보 jebo@jijace.com |
| 2017년 11월 14일(화) 2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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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빛을 품은 정유년의 태양은 온대지를 뜨거운 열 바다로 물들이고 인간들의 사지를 꼼짝 못하게 움켜잡아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육수를 담보로 해갈을 요구했다. 이것은 자연 앞에 가장 나약한 인간들의 한계다. 자연을 이길 수 있는 자는 신이란 존재일 것이다. 신은 자연을 잉태하고 자연은 인간을 존재시키며 인간의 삶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강한 힘을 갖고 있다. 그 자연 앞에 인간은 무기력한 존재 일뿐이다. 인간이 자연에 순응하면서 인간의 삶을 자유롭게 해야 행복이란 단어를 품을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은 자연의 이치를 깨달아야하고 자연 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발견해야한다. 너무나 복잡한 세상에서 인간으로 살아남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인간의 탈을 쓰고 인간답게 살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연에 불응하는 꼴이 되어 뭇 사람들은 타락한 인간이라 말한다. 그리고 신은 노여워한다. 자연에 순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진장한 삶이란 무엇을 말함인가? 필자는 삶에 대한 수많은 고뇌와 사연들을 가슴에 묻고 제주로 향했다. 제주에서 아침을 맞았다. 바다는 숨 쉬려 파도와 동행한다. 끝없는 수평선의 말없는 질주 속에 살려고 발버둥 치는 작은 파도의 숨소리가 함께하는 시간에 나는 나의 존재감을 의식했다.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진정한 삶은 무엇 인가?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연들을 품고 또 다른 사연을 만들어 내며 살아간다는 존재감을 표시하는 인간들의 삶. 그 삶의 행동들과 생각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의 척도 일 텐데, 지금 나의 삶은 진정한 삶을 위한 몸부림인가? 진정 나의 삶은 어떤 삶일까? 보라! 떠오르는 저 태양은 말없이 아무 조건도 부여하지 않고 우리에게 빛을 주지만 우리는 저 태양아래 수많은 생명을 잉태하고 창조하며 살아가면서도 불만투성이다. 삶이란 이런 것일까? 인간은 순수함이라는 단어를 잊고 산다. 시간이 흐를수록 험악한 세상을 만들어 스스로를 타락시킨다. 인간은 자연의 순수함을 배워야 할 것 같다. 그래, 세상이 아무리 변한다 해도 나만이라도 순수함으로 서로 공존하는 삶을 살아 볼까? 그러기 위해서는 나는 버려야한다. 내안의 썩어 문드러질 욕망의 사슬을 모두 다 끊어야 한다. 파도가 쉬지 않고 작은 숨소리를 내다 거친 숨소리를 내는 것 또한 그냥 그 순간 그대로 자기 삶을 살기 위함 일거다. 그래야 저 먼 끝자락 까지 동행 할 수 있으니까. 동행이라는 단어는 함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이 함께 가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세상을 홀로 살수가 없다.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 말하듯이 홀로 산다는 것은 인간사회에서는 버림받음을 말한다. 그러나 시대는 많이 변했다. 우리 모두라는 공동체가 무너져 버린 것이다. 공동체라는 것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함께 동행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함께하는 공동체가 무너지고 오직 나만을 위하는 공동체의식으로 변질된 공동체 주체의 본질인 나我라는 존재감 존립에 사로잡혀 세상은 나 홀로서기를 하고 있다. 홀로 선다는 것은 무척 위험한 발상이다. 함께 하는 정의로움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되어 변화하는 가운데 새로 변화된 이성적인 공동체가 만들어져야한다. 이성적 공동체란 인성이 바로선 하나하나가 모여 정의로운 사회공동체를 만들어야 밝고 맑은 사회 그리고 가정을 건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 잘난 맛에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바로 그들이 만든 사회가 지금의 적폐가 양산되는 현실이다. 오직 나만을 위한 삶. 그 삶속에 행복을 찾으려 하는 것이 현시대의 적폐이기 때문이다. 공동체의식도 함께 배려하고 이해하고 나누고 베푼다는 것보다는 우선 나의 이익을 위해 공동체를 이용하려는 의식구조가 잘못 되었다는 것이다. 나를 위해 세상을 농락해서는 안된다. 나의 존재만을 생각하면서 주위를 돌아보지 않음은 바로 나를 깊은 수렁에 빠지게 함이니 어찌 나 자신을 경계하지 않겠는가? 아버님을 하늘나라로 보내드리고 아프신 어머님을 모시고 제주로 향할 때 마음은 무척이나 서러웠고 힘이 들었다. 제주와 어머님 그리고 나와 동행한 아들과 딸의 마음은 한없이 소외된 한恨을 가슴속에 깊이 묻었다. 삶이라는 단어 앞에서 그리고 가정이라는 한 공동체의 질서를 생각하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진정한 마음을 담은 진실이라 불리는 허구와 함께 동행이라는 단어를 두고 한없는 삶의 눈물을 쏟았다. 그리고 소설의 서문을 썼다. 하늘은 푸르고 청명한데 어디에선가 불어오는 세찬 바람은 저 하늘에서 바라보고 계실 아버님의 음성을 동반한다. “유지有志를 받들어 가정을 지켜라, 어머님을 부탁한다.” 제주에서 한통의 문자를 접하고 하늘을 바라봤다. 무엇이 이처럼 만들었는가? 편을 만들어 정의라 말하는 진실은 무엇인가라는 안타까움과 함께 죽어 한줌 흙으로 돌아갈 육신의 안녕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가정이라는 공동체의 동행을 위함 이였다 말하려 함인가? 살포시 안아주는 제주의 밤바람에게 한통의 편지를 써서 보냈다. 靑雲의 뜻 심어 世上을 구하려 했으나 가정도 和睦하게 이끌지 못한 내가 어찌 그 뜻을 펴겠는가? 사사로이 자신의 이익을 구하려는 마음 추호도 없으나 不滅하는 家風을 지키기 위해 조상의 有志는 죽음을 불사하고 지키려 한다. 이제 늙어 큰 뜻이 무엇인지 깨달았으니 나 자신을 깨우치고 그 뜻을 널리 알려 비움과 버림의 철학을 바탕으로 인성을 바로 함이라 세속의 일이 마무리 되는대로 산사에 눌러앉아 자연과 벗하며 나를 버리려 함이니 그리 알라. 제주의 가을은 영글어서 좋다. 뜨거운 열기 보다는 따스한 기운을 넣어주는 햇살 상큼하고 신선한 바다 바람이 마음 가득해서 좋다. 정겹고 그리움 가득한 파도소리 그리운 님 올 것 같은 설레임이 있어서 좋다. 가을은 제주의 계절인가 보다. 제주의 가을을 어느 누가 사랑 하지 않으리…. 제주의 가을은 나에게는 삶이라는 단어 속에 나我라는 존재가 살아야할 의미와 굳은 결의를 부여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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