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군 발포 자위권 때문 아니다”

■ 전남경찰청, ‘5·18운동 과정 전남 경찰 역할’ 조사결과 발표

장봉선 jebo@jijace.com
2017년 10월 11일(수) 22:00
▲‘全南道警(전남도경)’의 ‘경’을 ‘공경할 경(敬)’으로 적은 상황일지 표지. 계엄군의 자위권 행사 근거를 만들기 위해 왜곡한 것으로 추정된다.


“상황일지 작성 방식 달라… 5·18 이후 기록 조작
북한군 관련 첩보·광주교도소 공격 주장 근거 無”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지역 치안을 맡았던 전남경찰이 시민을 향한 계엄군의 발포가 자위권 때문이 아니라고 밝혔다.
‘자위권에 의한 발포’라는 논리를 만들기 위해 시민들의 총기 탈취 시간 등 문서와 기록을 왜곡·조작했으며 북한군 개입설과 시민들의 지속적인 광주교도소 공격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전남경찰청은 11일 오전 청사 5층에서 ‘5·18민주화운동 과정 전남 경찰의 역할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문서와 기록 등을 바탕으로 경찰은 1980년 5월21일 오후 1시30분 나주경찰서 남평지서에서 시민들의 첫 무기실탄 피탈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날 낮 12시59분께 전남도청 앞에서는 시민들을 향한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자행됐다.
전남경찰은 “21일 오전 5시13분 광주세무서에서 M1 17정을 탈취 당했지만 실탄은 가져가지 않아 ‘무장’으로 보기 어렵다”며 “이 역시 계엄군의 총격으로 최초 사망자가 발생한 20일 오후 10시 이후다”고 설명했다.
국방부과거진상규명위원회 조사 결과 보고서에 인용된 ‘전남도경 상황일지’에 기록된 ‘5월21일 오전 8~9시 나주 반남지서와 남평지서 무기 피탈’ 내용에 대해서는 자료의 조작을 의심했다.
보안사가 보존하고 있는 ‘전남도경 상황일지’에 당시 경찰이 보유하고 있지 않던 ‘경찰 장갑차 피탈’ 등의 내용이 기재돼 있는 점, 생산기관과 년도 미기재, 표지와 본문 내용과 작성 방식이 다른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全南道警(전남도경)’의 ‘경’을 ‘공경할 경(敬)’으로 적은 상황일지 표지를 예로 들었다. 경찰관이라면 ‘경(警)’을 ‘경(敬)’으로 잘못 쓸 리 없다는 설명이다.
전남경찰은 “’도경’이라는 표현은 경찰 내부에서 사용하는 단어가 아닌, 외부 기관이 경찰을 표현할 때 쓰는 용어”라며 “’시민에 대한 군의 발포가 자위권 행사 차원의 정당한 행위’라는 논리를 구성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왜곡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북한군 개입설도 반박했다.
80년 5월 당시 광주에는 130여명의 정보·보안 형사들이 활동했고 시내 주요 지점 23개소에 정보센터를 운영했는데 북한 관련 첩보는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국가기획안전부가 작성한 ‘광주사태 상황일지 및 피해현황’, 전남경찰국이 작성한 ‘광주사태진상’ 등 문서에도 북한군 관련 내용은 없다.
오히려 ‘나주와 화순 등지에서 시민군들이 간첩용의자를 잡아 경찰에 신고·인계했고 서부서 강경섭이 간첩으로 오인 받아 끌려간 사실 등 시민군들이 당시 대공 용의점을 가진 사람을 내부적으로 적발하는 활동을 펼쳤다’고 설명했다.
시민군들이 지속적으로 광주교도소를 공격했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담양경찰서의 경우 5월21일 오후 3시30분, 한 차례 피습 당했을 뿐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으며 시민군의 활동도 다른 지역보다 미미했다는 점을 근거로 삼았다.
교도소 공격이 없었다는 당시 교도소장 등의 증언과 담양 거주 비무장 일반 시민의 총격 피해 등도 참고했다.
전남경찰은 “당시 광주 교도소의 위치가 담양으로 통하는 지방도로와 고속 도로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교도소 경계 부대에 의해 시민군의 담양권 진출이 원천적으로 차단됐으며 담양권으로 진출하려는 시민군이나 일반 시민들의 활동을 교도소 공격으로 오인했거나 의도적으로 과장·왜곡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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