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폴 슈나이스 목사 ‘80년 5월 회고하다’ 힌츠페터 5·18 광주로 보내 해외에 참상 알려 양정기 jebo@jijace.com |
| 2017년 09월 25일(월) 18: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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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유신독재시절부터 한국민주화운동 지원
독일 기자 고(故) 위르겐 힌츠페터씨를 광주로 보내 5·18의 참상을 해외에 알리도록 도운 폴 슈나이스(Paul Schneiss·독일) 목사가 ‘특별기고’를 통해 1980년 5월을 회고했다.
25일 광주트라우마센터의 뉴스레터에는 ‘힌츠페터와 1980년 5월’이라는 제목으로 슈나이스 목사의 글이 실렸다. 그는 1980년 5월 서울에 머물던 아내를 통해 계엄군의 정보를 입수했고, 당시 독일 제1공영방송(ARD-NDR) 일본특파원이었던 힌츠페터에게 사실을 알려 광주를 취재하도록 했다.
슈나이스 목사는 ‘나의 아내는 5월16일인가, 17일에 다른 선교사의 부인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다. 그때 그들은 조선호텔에 묶었다. 늦은 밤, 자정을 넘긴 시각에 아내는 내게 전화를 걸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통화 내용은 ‘통행금지’ ‘갑작스런 소음’ ‘군용차·군인·탱크가 서울의 남쪽 방향으로 이동 중’ 등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아내는 아침 일찍 호텔을 떠나고 싶었지만 당국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와 가까운 한국인 친구에게 전화가 왔고 휴전선을 지키던 군이 광주로 이동하고 있음을 알렸다. 그는 광주와 전라도가 야당 지도자인 김대중의 지지도가 높은 지역임을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슈나이스 목사는 아내에게 들은 소식을 일본 도쿄에 있는 동료와 독일 공영방송 기자에게 알리기로 결심했다.
그는 ‘우리는 그들에게 감사했다. 그들은 한국 파견에 대해 신속히 논의했고, 취재를 빠르게 결정했다. 힌츠페터는 취재를 떠날 준비가 돼 있었다. 그가 취재한 영상은 전두환이 보낸 계엄군의 만행과 그로 인해 광주 시민들에게 닥친 엄청난 재앙이 담겨 있었다’고 회상했다.
슈나이스 목사는 ‘한국을 둘러싼 모든 바람을 이겨내고 남북한이 다시 하나가 되길 희망한다’며 글을 마쳤다.
한편 슈나이스 목사는 1975년부터 1984년까지 독일 동아시아선교회의 일본 선교사로 파견돼 1970년대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부터 한국 민주화운동을 세계에 알리고 지원해온 독일 목회자다.
그와 그의 가족들은 한국을 200회나 오가며 빼낸 성명서와 유인물, 재판 기록 등을 통해 한국이 처한 민주주의 위기를 알렸다. 박정희 정권은 1978년 12월 슈나이스 목사를 홍콩으로 강제 출국시키고 입국 금지 조치했다. 그는 2011년 ‘오월어머니상’을 수상했다.
양정기 jebo@jijac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