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치춘추] 하지만 인간은 인간을 공격한다 임성욱(시인·사회복지학박사) 지방자치일보 jebo@jijace.com |
| 2017년 09월 20일(수) 2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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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찬미하는 듯 새들이 유영하고 있다. 나날이 높아만 가는 저 높은 창공에서. 가을로 가는 길목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다. 한창 피어나고 있는 영롱한 이슬 머금은 코스모스 꽃과 조화를 이루면서. 저렇게 자유자재로 유영하는 새들도 한때는 인고의 세월이 있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란 말이다. 거칠고 험악한 야생에서 삶을 영위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던 것이다. 포란기간이 끝난 후 껍질을 깨고 나온 후부터 무한한 학습이 필요했다. 세상의 빛을 보는 순간부터 고통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두발로 일어서다 쓰러지곤 했던 순간들이 그 얼마였을까. 그러다가 어느 날 두발로 일어서서 둥지를 붙잡고 버티며 어설픈 날개 짓을 수도 없이 해댔다. 하 세월이었다. 그러면서 두 다리의 힘을 길렀다. 그러던 어느 날 둥지를 떠날 때가 됐을 때 어미 새는 먹이를 물고 둥지에서 멀찍이 떨어져 부드러운 목소리로 불러냈다. 그때 새끼 새들은 좁은 집을 떠나 뒤뚱뒤뚱 넘어지면서도 어미에게 다가갔다. 아슬아슬한 인내의 시간이 지난 후 날개 짓을 더 많이 해봤던 새끼 새가 먼저 먹이를 받아먹었다. 이렇게 장고의 시간들이 흐른 후 새끼 새들은 어미 새를 따라 창공을 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성취감은 얼마나 컸을까. 감히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지금 쪽빛 하늘을 날고 있는 모든 새들은 이 같은 여정을 거쳤다. 새들도 이럴진대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당당히 직립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투자가 이뤄졌을까.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렇게 자라난 인간들. 그런데 새들과는 다르다. 삼라만상의 다른 생명체들과는 너무나 특이하다. 에덴의 동산보다는 아귀들의 소굴이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왜 그럴까. 한마디로 말하면 욕심 때문이다. 외형적으로는 아무리 커봐야 2m51cm다. 기네스북에 오른 터키 출신인 ‘술탄 쾨센’의 키다. 그런데 이것도 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죽을 때까지 키가 계속 자라는 말단비대증을 앓았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완치됐다. 보통의 인간들은 커봐야 대체로 2m 정도다. 그런데 그 속에 들어있는 욕심도, 남을 해하는 생각도 무한하다. 시기・질투심도 측량하기 어렵다. 짐승들은 동족을 공격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인간을 공격한다. 그것도 처절하게. 이게 바로 인간이다. 우리네 정치권을 봐라.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수도 없이 벌어지고 있다. 링 밖에서 열강들이 침을 흘리면서 노려보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욕심보를 채우기 위해서만 혈안이 되어 있다. 민족이고 국민이고 없다. 자신을 비롯한 아류에게 조그만 이익만 주어진다고 해도 주저함이 없이 저주를 해댄다. 참으로 안타깝다. 지난 보수정권 때 정적들을 제거하기 위한 수많은 음모실현. 자신들에게 조금만 기분 나쁘게 해도 그들의 숨통을 끊어버리기 위해 자행한 음습함. 그런데도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정의를 부르짖는다. 정치보복이라면서 손을 대지도 않았는데 먼저 땅에 드러누워 버린다. 거기에다 우리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희한한 야당은 오히려 그들에게 동조하는 듯하다. 결론적으로는. 그들의 선장은 역시 키를 어설프게 잡고 난파상태다. 호남에서는 호남 편을, 대구 등 영남에 가서는 그들 편을 드는 소리를 한다. SOC예산은 각 시・도가 다 줄었는데도. 역시 간교한 협량인가. 현재 한반도는 누란의 위기일 수 있다. 아니면 위기를 가장한 열강들의 이익을 위한 고도의 전략일 수도 있다. 때문에 중심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 바람에 아니 흔들리고 가뭄에 샘물이 아니 마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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