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여생 처자식과 함께하고파”

광주지역 유일한 비전향 장기수 서옥렬씨

강용운 yongpresser@jijace.com
2017년 07월 23일(일) 22:00



반공법 위반 혐의로 29년 복역… 광주서 통일운동 해와


광주지역 유일한 비전향 장기수 서옥렬(90)씨의 마지막 소원은 홍환이 이뤄져 56년째 보지 못한 북한에 있는 아내와 두 아들을 만나는 것이다.
광주 북구의 한 아파트에 사는 서씨는 3개월 전 지병으로 입원,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 ‘남은 여생 동안 북녘땅에서 처자식과 함께 살고 싶다’는 그의 간절함이 삶에 대한 의지로 이어진 듯 보였다.
서씨는 6·25한국전쟁 당시 월북해 인민군에 입대했다.
1961년 8월9일 아내와 두 아들(당시 5살·3살)에게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안내원들과 함께 공작원으로 남파됐다. 한 달 뒤 월북하다가 반공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이후 최종 판결에서 무기징역형을 받아 ‘쌍무기수(무기형이 두 개)’가 됐다.
1961년 9월부터 1990년 9월까지 광주·대전교도소 등지의 독방(0.75평)에서 옥살이를 했다.
1970년대 유신 독재 정권이 만든 사상전향공작반은 장기수들을 고문하며 사상과 양심의 자유마저 제한하려고 했다. 서씨도 고문 후유증으로 왼쪽 눈의 시력을 잃었고, 거동도 불편한 상태다.
서씨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 민주질서에 어긋나지 않게 살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29년 만에 출옥했지만, 지난 2015년까지 보호감찰법에 따라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했고, 연좌제로 가족까지 징역을 살거나 취업을 할 수 없었다.
고흥에 잠시 머물다 1991년 7월부터 광주에서 통일운동을 하며 홀로 지내온 서씨는 출옥 당일부터 이날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메모지 28권 분량)를 쓰고 있다.
서씨는 “분단의 아픔이 대립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북한을 통일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적대시하는 구조와 시선부터 바꿔야 한다”며 “공감을 토대로 우리 민족 간 자주·평화적 통일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광주시민사회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서씨의 북송을 추진하고 있다. 오는 25일 광주 동구 YMCA 백제실에서 ‘서옥렬 선생 송환추진위원회 결성’ 기자회견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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