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지역 이름의 역사 주경님(광주시의회 의원) 지방자치일보 jebo@jijace.com |
| 2017년 07월 06일(목) 22:00 |
|
한국사회의 작명 경향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하나는 각 가문의 항렬자를 따라 이름을 짓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항렬자를 따르지 않고 이름을 짓는 것이다.
항렬자를 따르지 않는 경우는 출생 상황(태몽·시기·장소·서열)과, 부모의 소망·감정과, 외모·재능의 특징 등을 반영하는 것으로 구분된다.
요즘에는 순우리말 짓기, 종교의 인명을 빌려서 짓기, 영어로 말하기 좋게 짓기 등의 경향도 두드러진다. 최근에는 항렬자를 따르지 않고 부모의 희망에 따라 개성 있는 이름으로 작명하려는 경향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지역 이름의 역사는 어떨까? 광주(光州)! 한자 뜻은 빛의 고장이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누정이었던 희경루 기문(記問)에 신숙주는 광주를 “서쪽으로 나주와 통하고 풍토와 기후가 넓고 시원하여 예로부터 경치가 좋은 마을이 많고, 높은 벼슬을 지낸 사람도 많았다”라고 기록해 놓았다.
삼한시대에는 마한(馬韓)에 속했다가 백제 건국(BC 18) 이후에는 백제 3주의 하나인 무진주(武珍州)가 되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경덕왕 16년인 757년에 무주(武州)라 개칭해 9주 도독(都督)의 하나로 삼았다.
고려 건국이후 태조 23년인 940년에 군현(郡縣)을 정비할 때 광주로 개칭 하였다가 성종 15년인 966년 해양현(海陽縣)이라 불렸고, 그 뒤 고종 46년인 1259년에 기주(冀州)로 바뀌고 수차례의 지위가 격하되었다가 회복되길 반복하다 1634년 광주목으로 환원되었다고 전해진다.
광주는 다른 도시들에 비해 일조량도 많다고 하니 빛의 고장이라고 이름 지었던 선조들의 지혜가 놀라울 따름이다.
고려 때의 문장가인 이집은 둔촌잡영(遁村雜詠)에서 ‘광주는 남부 지방의 가장 웅장한 진영이며, 옛날의 풍류가 지금까지도 남아 즐기고 있다’고 했고, 김상헌은 ‘글 읽는 소리가 성대하니 유학을 숭상하는 기풍이고 뛰어난 인재와 훌륭한 선비들이 명분과 행실을 힘써 닦는다.’고 광주의 예술적인 멋과 학문적 기풍을 칭송했다.
그러나 광주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불의에 맞서 분연히 일어서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을 지향하는 저항 정신이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에 4000여 명의 광주 사람이 참여했고 1919년 3·1운동이후 최대 민족 항쟁이 된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은 우리지역에서 발단이되 전국으로 퍼져나간 학생항일운동의 화룡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사에 잊혀 질수 없는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만큼 우리지역에 영향을 미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사건은 없을 것이다. 그동안 외지(外地)사람들로부터 수많은 오해와 곡해를 받아온 게 사실이며 아직도 부정적인 선입견의 시각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최근 정권을 되찾음과 동시에 5·18의 재조명과 드러나지 않았던 진실들에 대한 재발견이 다각도로 진행되고 있어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평범한 진리가 대한민국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됨을 웅변하고 있다.
민선 6기 들어 ‘광주형 일자리 모델’, ‘광주형 복지정책’, ‘광주형 참여혁신모델’ 등 시정주요 추진과제에 ‘광주’를 의도적으로 넣어 붙여 이름 짓고 있다. 광주의 나눔 정신과 지역적인 특성에 맞는 정책을 개발하고 추진하겠다는 의도는 이해하겠으나, 자칫 현실성과 실현가능성이 결여돼 추진과정에서의 논란으로 인한 잡음 등에 명예로운 ‘광주’만 애꿎은 수난을 당하는 건 아닌지 다소 작위적인 작명에 우려스러운 점도 없지 않다.
세계적인 인권·민주·평화의 보통명사가 된 ‘광주’의 이름이 범시민적 동의과정도 결여된 채 함부로 사용되어지는 일이 없도록 좀 더 신중해야 할 것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가슴 아린 내 고장 광주. 대한민국 미래 역사를 새롭게 써내려갈 찬연하고 영롱한 생명의 빛을 명예로운 광주의 이름으로 영원히 비추어줄 것을 믿는다. 광주는 비단 광주만의 것이 아닐 것 이므로.
지방자치일보 jebo@jijac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