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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이 성과연봉 1천600억원을 전액 환수해 비정규직 처우개선과 청년고용 확대에 사용해달라고 제안했다.(16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 발표) 이 제안을 대다수 언론들은 성과연봉제 ‘거부’ 차원에서만 보도했다. 양대 노총의 제안이 갖는 ‘또 다른’ 의미는 없는 것인가.
비슷한 소식이 올해 대선 전에도 나왔다. 지난 3월14일, 조상수 전국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새 정부가 좋은 일자리 확대, 비정규직 정규직화 처우개선에 나선다면… 노동자들도 노동시간 단축 등을 통해 일자리와 임금을 나눌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노총은 ‘연 1800시간 노동시간 상한제’를 대선 정책과제로 내 놓았다. 한국노총도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 60만개를 창출하자”고 제안했다.
일자리를 창출하고 일자리의 질을 개선하는 데 노동계가 ‘양보’안을 내 놓았다는 게 이 소식들의 공통점이다. 노동계가 임금 삭감을 감수하면서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 처우 개선, 청년고용 확대 등 당면한 일자리 문제 해결을 제안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문제는 사용자 측의 답이 없다는 것, 그리고 이 제안의 시대적 의미를 정부도 시민사회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제안들은 모두 ‘광주형 일자리’에 닿아 있다. 일하기도 좋고 기업하기도 좋은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 ‘광주형일자리’의 목표이다. 목표가 성공하려면 비정규직과 정규직, 고임금과 저임금 등으로 양극화되어 있는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그래야 일하기가 좋다. 개선에 드는 직접비용 및 사회비용을 기업에게만 떠맡겨서도 안된다. 노사민정이 함께 분담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하기도 좋다. 사회 각 분야가 자기 몫의 양보안을 내 놓아야 광주형일자리 실현을 위한 첫 걸음을 뗄 수 있다. 광주형일자리를 성공시키기 위한 핵심과정이 ‘사회적 대타협’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사한 국내외 사례가 있다. 1980년에 네덜란드는 노·사·정이 노동시간 단축을 합의해 일자리 창출을 실현했다. 이른바 바세나르협약이다. 노조는 임금동결을, 기업은 노동시간 단축을 받아들였으며, 정부는 재정 및 세제로 이를 지원했다. 학계에서는 바세나르협약을 20세기 노동사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IMF구제금융 한파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 몰릴 때 한국의 유한킴벌리는 3조2교대를 4조2교대로 바꿔 일자리를 오히려 늘렸다. 2000년대 독일 폭스바겐사 노·사는 ‘적정임금’을 합의해 ‘아우토500’ 프로젝트를 가동시켜 공장의 해외 이전을 막고 고용을 늘렸다.
이 같은 사례들을 특수한 상황에 등장한 ‘예외적인 것’으로 보는 게 국내의 시각이다. 모든 규범의 최초 등장 시기에는 어김없이 ‘예외’의 모습을 띤다. 하지만 그 예외가 일반화되면 ‘법칙’ 혹은 ‘원리’로 자리 잡는다. 광주형일자리가 근간으로 삼고 있는 원리는 ‘사회적 시장경제’(social market economy)이다. ‘보이지 않는 손’ 곧 시장의 자원분배 기능을 활용하되 그 기능이 사회의 건강성을 돕는 방향으로 작동하게끔 ‘보이는 손’을 투입하는 방식이다. 사회적 대타협이 ‘보이는 손’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경제-고용 메커니즘을 한국경제의 원리로 정착시키자는 게 광주형일자리의 전략이다.
우리나라 정치적 민주주의에 광주가 기여한 것처럼 경제민주화에도 역할을 보태겠다는 것이 광주형일자리의 제안 배경이다. 새 정부도 광주형일자리에 동의하고 있다.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가 마련한 ‘일자리 100일 계획’ 속에는 ‘노사상생형 일자리 모델(광주형 모델) 확산 방안’이 포함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장하성 정책위원장도 정부차원의 광주형일자리 지원과 추진을 약속했다.
광주형일자리의 첫 단추를 꿰는 ‘양보’가 정부도 기업도 아닌, 처지가 가장 곤란한 노동계라는 점이 반가우면서도 안타깝다. 기업은 그렇다 치더라도 정부조차도 이 ‘양보’가 광주형일자리의 출발점이라는 걸 모르는 것 같아 또한 답답하다. 노동계 쪽의 ‘제안’이 등장한 만큼 기업과 정부는 ‘응답’을 내 놓아야 한다. 자동차밸리 담론은 광주형일자리의 ‘광주버전’이다. 광주형일자리의 전국버전은 ‘더 좋고 더 많은 일자리’이며 그것을 실현하는 장이 ‘사회적 대타협 테이블’이다. 여전히 힘이 좋은 새 정부가 테이블 세팅에 서둘러 나서야 한다.
지방자치일보 jebo@jijace.com
2026.10.17 (토) 22: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