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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 박종철 고문치사 조작발표 도화선돼
항쟁 이끈 국본 최초 발족 광주 망월동서 탄생
분수령 된 국민평화대행진 지역서 54만명 참여
1980년 5월과 87년 6월. 그리고 박종철, 이한열.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대통령 직선제 실시라는 개헌을 통해 6공화국을 탄생시킨 6월 민주항쟁이 어느덧 30주년을 맞았다.
5월의 아픔을 계승해야 할 민주화 정신으로 삼고 진상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던 수많은 이들은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린 촛불 시민혁명처럼 운동권 뿐만 아니라 일반시민들과 함께 거리로 나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한층 발전시킨 6월 항쟁을 이끌어 냈다.
‘전두환 정권을 부정하고 민주화를 열망했던’ 6월 항쟁은 광주의 5월 정신에 기반을 둔 시민들의 힘으로 이뤄질 수 있었다.
이런 시민혁명의 중심에는 박종철, 이한열 두 젊은이의 희생이 있었다.
그 해 1월 발생했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진실이 5월 18일 천주교정의사제구현단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지면서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됐다. 이어 재야운동세력의 6월10일 대규모 정부 규탄대회를 앞둔 6월 9일 연세대생 이한열씨가 머리에 최루탄을 맞고 뇌사상태에 빠지면서 그동안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던 학생뿐만 아니라 직장인까지 전국 각지에서 거리를 쏟아져 나왔다.
특히 그동안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광주와 전남은 6월 항쟁의 주체가 됐던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이하 국본)의 시작을 5월 18일 5월 영령들이 묻혀있던 망월동에서 ‘413호헌조치 반대 및 민주헌법쟁취 범도민 운동본부’이름으로 열었다.
당시 가장 많은 130여만명(국본 집계)이 거리로 나섰던 26일 민주평화대행진에는 광주 50만, 전남 4만 등 54만여명이 참여했다. 전북(18만여명)까지 포함하면때 전국에서 모인 이들 중 절반이 넘는 인원이 호남인들이었다.
이 같은 호남과 전국 민주화세력의 노력은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는 ‘6·29선언’으로 이어졌고 30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 ‘6공화국’의 문을 활짝 열었다. 30여년 계속된 군사독재에 종지부를 찍고 국민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는 정치적 변혁을 이뤄낸 6월항쟁의 현대사적 의미는 대단히 크다.
대학교 2학년생으로 6월 항쟁에 참여했던 조오섭 광주시의원은 “80년 5월과 87년 6월, 촛불혁명은 연속선상에 있다. 그때의 주역들이 지금 사회 각계에서 활동하면서 그 때 다졌던 민주주의의 염원이 이번 촛불로 활짝 꽃피웠다고 생각 한다”며 “이번 30주년을 맞아 광주의 정신을 계승한 6월 항쟁이 가진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용확 기자
양정기 jebo@jijace.com
2026.10.18 (일) 00: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