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용수는 커녕 마실 물도 없어요… “이런 가뭄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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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농업용수는 커녕 마실 물도 없어요… “이런 가뭄 처음”

“벼 말라 죽는데 하늘만 쳐다봐…” 신안 천수답 농민들

▲무안군 운남면 연리 양곡마을 구일간척지에서 이장 박관인(47)씨가 직파법 농사라도 짓기 위해 가뭄으로 갈라진 논바닥에 약을 뿌리고 있다.


대파 주산지 진도에선 대파 성장률 반 토막, 상품성 ‘뚝’
“생수 사다 양치”… 가거도 ‘알샘’ 100년 만에 말랐다

“농사 20년 만에 이런 가뭄은 처음입니다.” <▶관련기사 3면>
무안군 운남면 연리 양곡마을 구일간척지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는 이장 박관인(47)씨는 4일 “하천과 저수지도 말라버렸다”며 이 같이 말했다.
이 마을 논바닥 대부분은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다. 물기를 머금은 논을 보기 힘들었고, 일부 논에는 바람이 불자 흙먼지가 날렸다.
타들어가는 농토에서 자라던 모는 사실상 고사됐다. 말라 비틀어진 모판도 곳곳에 방치됐다.
가뭄으로 이 마을 주민들이 모내기를 한 79만388㎡의 논 가운데 42만9752㎡ 규모의 모는 고사됐다.
나머지 36만3636㎡의 논에는 물이 없어 모내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농업용수로 쓰였던 양곡저수지와 주변의 작은 하천도 보름 전 말라버렸기 때문이다.
박씨도 지난달 8일 자신의 논(23만1404㎡)에 모를 심었지만, 10분의 1정도(2만3140㎡)의 논만 물기를 머금고 있다.
이마저도 1㎞ 가량 떨어진 가정에서 지하수를 끌어다 논에 넣으며 버티고 있는 수준이다.
물 순환이 안 되면서 남은 모의 염분 농도가 벼 생육 한계치를 넘어선 0.56%까지 측정됐다.
가뭄이 지속되면 올해 농사는 반타작도 못할 판이다.
박씨의 아내 배현자(44)씨도 ‘야속한 하늘’을 보며 한 숨만 내쉬었다.
갈라진 논바닥에서 고사 직전의 벼를 만지던 박씨는 이내 돌처럼 굳은 땅으로 이동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풀약을 연신 뿌렸다.
그는 약을 뿌린 직후 “벼 이양 작업은 사실상 어려워졌다. ‘직파법’으로라도 벼농사를 이어가려고 한다. 상토도 모자라서 장성에서 가져오고 있다”며 볍씨를 들어보였다.
그러면서 “무안군에 5곳의 관정을 뚫어달라고 요청했는데, 2곳만 작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관정을 뚫으면 전기가 들어와야 하는데 한 달 이상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 마을 저수지가 2~3차례 마른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바닥을 드러낸 적은 처음이다. 현 상태로는 가뭄 피해를 복구할 방법이 없다. 6월 중순이 넘어가면, 벼를 심어도 수확할 수 없다.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마을 인근 동암리 양파 재배 농가도 가뭄의 영향을 받고 있다.
밭에 앉아 양파를 재배하던 한 농민은 “양파의 모양이 들쭉날쭉이고, 가격도 올라 수급도 원활하지 못하다”고 설명했다.
신안군 압해읍 숭의마을 농민 최학송(70)씨는 4일 “수십 년 농사에 이런 가뭄은 처음”이라며 “하루 이틀 새 비가 오지 않으면 6만 평에 논에 모내기를 다시 해야 할 판이다”고 장탄식을 했다.
최씨는 지난달 15일 마을 앞 6만 평의 논에 모내기를 마쳤다.
통상 모내기는 6월 중순까지 하지만 부지런한 최씨는 매년 해오던 방식대로 일찌감치 모내기를 끝냈다.
그러나 모내기 이후 단 1차례만 소나기가 내려 모들이 말라 죽어가는 장면을 지켜봐야만 하는 처지이다.
숭의마을 들녘은 간척지를 개간한 논이어서 주변에 저수지가 없는 그야말로 완전한 천수답이다.
최씨는 “갓 심은 모가 말라 죽어가고 있지만 물을 구할 방법이 없어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며 “하루 이틀 정도 기다렸다가 비가 오지 않으면 모내기한 논을 모두 갈아엎고 다시 모를 심는 수밖에 없다”고 고통스러워했다.
물이 귀해 모내기 작업에 동원된 이앙기 등 농기구의 청소도 못 하고 있다. “차라리 좀 기다렸다가 모내기를 했으면 이런 참담한 사태는 없었을 것 아니냐”며 자신의 부지런함을 자책하기까지 했다.
모를 다시 심는 문제도 쉬운 일이 아니다. 못자리를 새로 만들어 모를 키워야 하는데 주변에서 못자리용 물조차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마을에서 물을 끌어오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주지도 않을뿐더러 준다 해도 끌어올 방법도 마땅치가 않다”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결국 다른 곳에서 어린모를 사와 심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최씨는 “그렇지만 이 경우 영농비가 최소 3배 이상 더 든다. 차라리 농사를 포기하고 싶다”며 목이 메었다. 모를 자가 생산할 경우 못자리 1판당 1천원선이면 충분하지만 외부에서 사 올 경우 3배가 비싼 3천500원을 줘야 한다. 여기에다 이번 모내기에 들어간 비용 볍씨대와 인건비 등 영농비 3천500만원을 고스란히 날리게 되기 때문이다.
가뭄으로 인한 애타는 농심은 밭작물도 예외가 아니다.
전국 최대 대파 주산지인 진도군 임회면 송정 마을 김호열(72)씨도 “평생에 이런 가뭄은 처음으로 1천 평 대파 농사가 폐농위기에 놓여있다”고 하소연했다.
김씨는 “지난달 파종 이후 지금까지 한 차례만 소나기만 내리는 등 가뭄이 점점 심해지면서 대파의 성장률이 반 토막이 난 상태에서 현재는 윗부분이 모두 하얗게 말라죽어 가고 있다”고 비통해했다.
그는 “현재 대파는 사람으로 말하면 목숨만 부지하고 있는 실정으로 하루도 버티기 힘든 상태”라며 “설령 비가 와서 가뭄이 해갈되더라도 상품성이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마을에 저수지가 있지만 최근 둑을 높이는 공사를 하느라 물을 모두 빼내는 바람에 물을 구할 수도 없다”며 “지금 진도 대파 농사의 운명은 오직 하늘에 달려 있을 뿐”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또한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는 계속된 가뭄에 마을 중심가 우물이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
‘알샘’이라 불리는 이 우물은 급수원으로 사용되다가 수도 시설이 보급된 뒤로는 허드렛일에 필요한 물을 공급해왔다.
마을 노인들은 “알샘이 마른 건 10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외지 손님을 받는 식당은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다.
한 식당 운영자는 “외지인들이 슈퍼마켓에서 생수를 사다가 이를 닦는 판에 식당에서 쓸 물이 있겠느냐”며 “손님도 못 받으니 (육지로)나가야겠다”고 말했다.

김태중 jebo@jijac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