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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스승의 날은 특별한 행사 없이 조용히 보냈다. 작년 스승의 날은 일요일이어서 더 좋았다. 대부분 스승의 날 하면 카네이션과 선물을 떠올린다. 스승의 은혜가 하늘같다는 사람은 드물고, 선물을 보낼까말까 힘들어하는 사람은 많다. 일부 학부모나 교원들 때문이지만 청렴과 연관지어 해마다 도마 위에 오르는 날이다.
금년에는 청탁금지법 시행 첫해라 속이 더 상했다. 시인 서정주는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울어야’한다고 했지만, 이제는 한 송이 카네이션을 선생님께 건네기 위해서는 봄부터 대표학생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금품이나 선물 금지는 당연한 일이지만 꽃 한 송이를 놓고 이렇게 법망을 씌워놓았다. 학생 개인은 안 된다. 학부모도 안 된다. 반장이나 학생회장이 공개적으로 주는 카네이션은 허용한다. 손 편지는 가능하지만 종이꽃은 안 된다.
청탁금지법 취지를 찬성하지만 스승의 날을 조이고 있는 꽃 한 송이 족쇄는 선생님들의 자존을 힘들게 한다. 상징적인 꽃 한 송이를 놓고 사제간의 정리보다는 이해당자사간의 거래로 보는 것이다. 선생님이 받은 제자의 손 편지와 종이꽃의 차이는 무엇일까. 손 편지는 존경이고, 종이꽃은 뇌물인가.
사람들은 모여서 365일 중 어떤 날을 정하고, 거기에 의미를 새긴다. 하여 기념일이 만들어지고 축하나 추모를 한다. 그런데 스승의 날처럼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부침과 영욕이 반복된 기념일도 드물 것이다. 1973년 정부는 서정쇄신 차원에서 사은행사를 규제하고 스승의 날을 폐지했다. 그러다가 스승을 공경하자며 1982년 기념일로 제정되어 되살아났다. 선생님들이 제자의 발을 씻어주는 등 귀감이 가는 사례도 많지만 사제간에 공경심이 얼마나 높아졌는지는 의문이다.
요새 아픈 선생님들이 많다. 경력 10여년인 초등학교 한 선생님의 메모를 보면 지금 카네이션을 받네마네 하는 차원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많은 선생님들이 겪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다. 특별한 사례 같지만 교단의 현실을 보여준 것이어서 소개한다.
“전학도 오기 전에 학급으로 전화 한 통이 왔다.
학부모: 그 반 학생들 상태 어때요?
선생님: 누구십니까?
학부모: 내 딸 전학가려고 하는데 그 반 학생들 상태 어떠냐고요? 문제되는 학생들 있어요?
선생님: 어머니, 지금 수업시간에 전화하셔서 반 학생들 상태 어떠냐고 물으셨나요? 저한테는 우리 반 학생들이 최고이고 문제되는 학생은 없습니다.
황당하고 무례한 전화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학생은 전학을 왔다. 전학 3일째부터 학부모의 밤늦은 전화는 시작되었다.
‘학생들이 딸과 안 놀아 준다’, ‘학교 도서실 이용, 급식은 마음대로’, ‘집에서 말을 안 듣고 고집을 부려서 해결해 달라’는 사소한 내용부터 학부모의 개인적인 고민, 가정사, 그 전 학교에서의 일 등 가정 문제까지 쉼없이 계속되었다. 전화 통화가 안 되면 보내는 장문의 문자들. 담임선생님과 통화가 되지 않는다고 다른 교직원에게까지 전화하는 일. 계속된 전화와 항의성 발언과 불만, 이어지는 상담 그리고 반복되는 다른 반 학생, 다른 학교 학생들과의 다툼…. 경찰서로 이어지는 상담까지. 끝이 보이지 않는 이러한 상황들이 반복되었고 교직생활에 대한 자신감은 급격히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이 선생님은 교장선생님과 동료 교원들의 따뜻한 격려와 성원으로 힘든 나날을 견뎌냈고, 학생은 3개월 후 집안 사정으로 전학 온 학교로 다시 재전학을 갔다고 한다.
낙타는 삼키고 모기는 뱉는다는 말이 있다. 나라의 도둑을 잡고 조그마한 부패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청탁금지법 앞에서 스승의 날은 씁쓸하다. 꽃 한송이 줄 수 있네 마네로 이렇게 입살에 오를 바에야 ‘굿바이, 스승의 날’이 더 좋지 않을까.
지방자치일보 jebo@jijace.com
2026.10.18 (일) 03: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