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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57주년을 맞이하는 4·19혁명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종신집권을 위해 자유당 정권이 1960년 국민주권을 박탈한 3·15부정선거가 도화선이 됐다.
그 첫 봉화를 올린 곳이 광주 금남로다. 4·19혁명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최초로 민주주의 실현을 목표로 일어난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이에 동조한 시민과 연합한 민중 봉기로 대한민국 민주화의 초석을 놓은 역사다. 4·19 민주이념은 헌법전문에 3·1독립운동과 더불어 명기되어 있으며 헌법정신과 대한민국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이 위대한 4·19역사의 진원지인 광주는 ‘민주화의 도시’라는 자랑스런 역사가 있다. 광주가 4·19혁명의 진원지임은 1960년 3월15일·16일자 주요 일간신문들이 광주와 마산의 상황을 함께 보도한 기사 내용으로도 입증된다.
2011년 1월21일에는 서울 4·19보훈단체 공로자회에서 광주 금남로공원에 ‘4·19혁명 진원지’라는 표지석을 건립하고 기념식을 개최해 광주가 진원지임을 뒷받침했다. 당시 기념식에는 이기택 전 4·19공로자회장, 박준영 전 전남도지사, 장휘국 광주시교육감, 광주시의회 부의장, 시민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대학생과 시민이 군사독재정권과 맞서 싸운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은 수천명의 사상자를 내고 비록 좌절을 겪었지만, 광주는 한국 민주화과정에서 특별한 위상을 갖게 됐고 세계속의 민주화도시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이러한 자랑스런 민주화 역사를 갖고 있는 광주가 그 뿌리인 4·19 역사를 제대로 계승하거나 관리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아무리 위대한 역사일지라도 관리하지 않으면 진흙 속의 진주와 같다. 위대한 대한민국 4·19역사의 진원지인 광주에 기념탑 하나 없고 진원지인 금남로공원을 ‘금남로4·19공원’으로 명칭을 보완하겠다던 약속도 이행되지 않고 있다.
광주시민헌장에는 “광주학생독립운동과 5·18민주항쟁으로 이 땅에 민족 정기와 민주주의를 일으켜세운 빛과 희망의 도시”로 기록되어 있어 광주에는 4·19 민주화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지 의심케 한다. 문화전당 앞 민주의 종에도 5·18민주항쟁과 학생독립운동, 고싸움, 풍물놀이가 조각되어 있고 4·19는 빠져 있다.
광주 4·19역사는 소외된 채 방치되면서 대부분 시민들은 광주 4·19역사가 존재하는지조차 잘 모른다. 시민으로서 자부심을 잊고 있는 것이다.
광주의 역사 관리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광주시에서는 2006년 2월7일 기념관·봉안실·사무실을 갖춘 2층(180평) 규모의 4·19혁명기념관을 개관했으나 규모가 너무 협소해 기념관으로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광주시에서는 광주 3·15의거와 4·19역사를 관리하기 위해 2013년 10월1일 조례 제4292호를 제정한 바 있다. 하지만 조례 공포 이후 4·19 역사 관리의 실적이 눈에 띄지 않고 있다.
광주시교육청에서는 광주 4·19민주화 역사의 계승발전을 위해 최초 발상지인 광주고등학교에 4·19민주혁명 발상지 역사교육관을 3층(연건평 251평) 건물로 지어 지난 3월 완공했다. 이 역시 운영 예산이 확보되지 않아 건물만 세워져 있다. 전시 콘텐츠는 예산 확보 후 추진될 예정이다.
4·19민주혁명 발상지 역사교육관이 개관되면 민주화도시 광주의 위상은 물론 도시 정체성과 호남정신이 승화되고 민주 발전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광주에는 불의에 항거한 3대 민중항쟁의 역사가 있다.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과 1960년 광주4·19혁명, 1980년 5·18광주민중항쟁은 광주 정체성과 호남정신의 산실이다.
불의에 항거한 3대 민중항쟁의 역사적 현장을 ‘광주 관광 제1코스’로 지정 운영함으로써 민주화도시 광주는 다른 시·도와 차별화되고 세계속의 민주화 도시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지방자치일보 jebo@jijace.com
2026.10.18 (일) 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