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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심상정, 안철수, 유승민, 홍준표. 국회의원을 가진 정당의 대선 후보들이다. 심상정 말고는 모두 영남 출신이다. 호남 출신은 없다. 국민의당 박주선 의원, 민주당 최성 고양시장이 후보 경쟁에 뛰어든 우리지역 출신인데 의미 있는 득표를 하지 못했다. 호남정치의 현실을 개탄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민주당 대 새누리 계열의 양당 구조가 정착된 이후 역대 대선에서 호남은 언제나 찬밥 신세였다. 민주당 계열을 지지하는 80~90% 수준의 몰표가 나오니 어느 정당이든 호남표심을 잡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별로 없었다. 호남의 선택이 당의 선택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민주당의 후보가 되기 위한 과정에서만 대접받았다. 그러니까 예선에서는 구애를 펼치다가 본선이 확정되면 ‘호남역할론’ 운운하며 몰표 달라는 소리만 듣는 처지였다. 가까스로 정권을 잡았던 10년 동안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호남출신 엘리트들의 고위 공직 인사 잔치는 있을지언정 지역민의 삶이 유별나게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다르다. 인물 중심으로 보면 호남의 몰락이지만 정당을 놓고 보면 호남 꽃놀이패다. 대선 고지에 가장 가까이 다가서 있는 정당은 민주당과 국민의당이다. 두 당은 모두 호남이 뿌리이다. 민주당이 전국정당의 모양새를 갖춘 건 사실이지만, 호남과 수도권의 ‘호남인’들이 지지세력의 중추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국민의당 국회의원의 지역구는 호남이 9할에 이른다. 가히 ‘호남당’(비하의 뜻은 결코 아니다.)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런 두 당이 대선에서 대통령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된다. 이제는 본선에서도 충분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호남에 구애를 해야 한다.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다시 돌아오듯 이번에도 ‘호남역할론’이 등장할 것이다. 무시하자. 호남은 꾸준히 역할을 해왔다. 그들이 역할을 주문하지 않아도 알아서 역할을 하는, 세계에서 가장 지혜로운 주권자가 호남사람들이다. 이제 대선 후보들이 해야 할 일은 자신들이 호남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내 놓는 것이다. 그들이 내 놓는 역할 상품을 보고 취할 것인지 버릴 것인지 결정하면 된다.
혹자는 지역이기주의를 경계한다. 지방선거도 아니고 대선인데 호남타령은 그만 두고 국가를 생각해서 잘 투표하자는 주장이다. 그 마음의 티없음은 이해하겠으나 따져보아야 한다. 지역이 따로 있고 국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지역의 총합이 국가이다. 다른 지역의 정당한 이익을 훔쳐오는 것만 아니라면 호남의 정치경제적 이익추구가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개인, 지역, 직능, 이념 등 부문의 이익 추구를 수용하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선진화한 민주사회일수록 그러한 이익추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나는 지금 처음으로 형성된 ‘호남정당 대 호남정당’이 경쟁하는 대선 국면을 활용해 호남의 이익을 관철시키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문제는 대선 후보들과 각각의 정당들이 ‘알아서’ 우리의 이익을 챙겨주지는 않을 거라는 점이다. 우리가 준비해 그들에게 줘야 한다. 전제조건이 있다.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호남의 이익이 국가의 이익과 부합한다는 증명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적정임금·적정노동시간을 골자로 한 광주형일자리나 서남해안권의 동북아 전진기지 개발 같은 게 좋은 샘플이다. 둘째는 국가의 이익과 전면적으로 부합하지 않더라도 타지역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 정책테마를 발굴하는 것이다. 전라도 정도(定都) 천년 관련 사업이나 에너지산업밸리, 실종된 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의 정상화 같은 게 있을 것이다. 둘로 나눠 이야기했으나 원론적인 차원에서 모든 지역의 이익은 곧 국가의 이익이다. 국가 구성의 기본 요소 중 하나인 ‘영토’의 일부가 곧 ‘지역’이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동안 호남의 주권자들은 우리나라의 정치적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호남 고유의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실현을 유보해 왔다. 그렇게 해서 호남은 민주화의 성지가 되었고, 이른바 ‘광주의 선택’이 한국정치사의 고유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명예로운 일이다. 하지만 명예의 이면에는 사막화되어 가고 있는 지역사회의 아픈 모습이 있다. 그동안 명예 많이 먹었다. 호남민의 높은 주권자 의식을 감안하면 어디로 도망갈 명예도 아니다. 이제는 실리를 추구하자. 호남의 실리가 대한민국의 실리로 연결되는 멋진 국가정책을 찾고 만들고 제안하자.
호남은 죽음을 무릅쓰고도 할 말은 하는 소크라테스와 같다. 소크라테스는 언제나 배고파야하는가. 배 부르는 걸 추구한다고 해서 돼지가 되는 것도 아니다. 호남이 ‘배부른 소크라테스’가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대선 국면에 호남 인물은 보이지 않으나 ‘호남 정당’은 두 개씩이나 있다. 집요하면서도 지혜롭게 두 정당을, 두 정당의 대선 후보들을 활용하자.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다.
지방자치일보 jebo@jijace.com
2026.10.18 (일) 08: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