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문화전당을 유린하는가?
검색 입력폼

누가 문화전당을 유린하는가?

민형배(광주시 광산구청장)



보이는 권력(visible power)은 보이기 때문에 권력을 함부로 쓰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권력(invisible power)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권력을 멋대로 휘두른다. 아니다. 제멋대로 휘두르기 위해 ‘나쁜 권력’은 스스로를 감춘다. 권력이 잘 보이면 그 나라는 민주주의에 가깝다. 권력이 잘 보이지 않으면 독재국가라고 봐도 무방하다.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의 말이 생생하다. “최순실씨는 존재하지 않고 뒤에서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도와주는 사람이었는데 밖으로 등장하면서 일이 이렇게 꼬인 것 같다.” 보이지 않아야 할 권력이 보임으로써 ‘꼬였다’는 것이다. 탄핵심판 법정에서 박근혜 정부의 反민주적 속성을 얼떨결에 증언했으니 정 전 비서관 또한 ‘파면’에 기여한 셈이다.
필자가 참여정부 비서관으로 일할 당시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립 등 광주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이 잘 이뤄지도록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정권이 바뀌고 나서도 책임감을 떨쳐버릴 수 없어서 문화중심도시 사업에 늘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끝난 지금, 옛 전남도청 터에 들어선 문화전당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필자도, 광주시민도 잘 알지 못한다.
관심이 부족했다는 반성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문제의 본질은 사사로운 반성이 아니다. 공공시설이라면 스스로 투명해야 한다. 묻지 않아도 먼저 시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더군다나 문화전당은 ‘국립’ 시설이고 ‘5월항쟁’의 미래가치 실현 차원에서 기획·추진됐다. 한 점의 감춤도, 한 가닥의 의혹도 없어야 한다. 현실은 거꾸로다. 의혹투성이이고 좀체 속내를 알기 어려운 장막 속에 문화전당이 숨어 있다.
지난해 12월 7일 광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시아문화전당을 바로세우기 위한 시민모임과 광주민족예술단체총연합, 참여자치21 등은 성명서를 통해 “전당 개관을 불과 7개월 앞둔 2015년 2월, 아시아문화전당 측은 갑자기 전시예술감독을 해임하고 수년을 준비해 왔던 개관 프로젝트를 백지화했다…… 이로 인해 그동안 개관을 위해 사용된 50억 원이 낭비되고, 준비됐던 콘텐츠가 모두 사장되었으며, 그동안 구축됐던 국내외 문화예술 네트워크가 무너져 버렸다……”고 폭로했다. (자세한 내용은 “최순실-차은택 일당, ‘광주’ 유린하고 ‘평창’으로”, 오마이뉴스 2016.12.23. 기사 참조)
최근 문화전당 측은 몇 년 간 공석으로 있던 전당장을 뽑기 위해 4차 공모 절차를 진행했다. 이 와중에 앞선 공모에서 탈락했던 전당장 직무대행이 관사로 이삿짐을 옮기다 들켰다. 공모결과 발표가 한 달이나 남았는데 이삿짐을 옮긴다는 건 최순실이 자격도 없이 청와대를 들락거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달 23일 열린 국회 교육문화관광위에서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의 질의를 통해 밝혀졌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분노와 부끄러움에 몸서리친다. 광주와 5월항쟁이 ‘박근혜·최순실스러운’ 인간들에게 유린당하는 현실에 분노한다. 코앞에서 벌어지는 유린의 참상을 광주도 아닌 ‘서울 마포구을’ 지역구 국회의원에게서 ‘전해들은’ 현실에 한없이 부끄럽다. 광주의 선출직 공직자, 이른바 정치인 가운데 한사람으로서 미리 예방하지 못한 점, 역시 시민들께 면목없다. 사죄드린다.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혹여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최선을 다 하겠다는 다짐도 함께 드린다.
문화전당은 문화중심도시 조성 사업 가운데 하나이다. 국책사업이지만 중앙정부에 모두 맡긴 건 아니다. 특별법은 광주광역시의 개입과 통제를 광범위하게 허용하고 있다. 예컨대 제3조 국가 및 광주광역시의 책무, 제4조 시민사회협약의 체결, 제5조 종합계획의 수립, 제7조 연차별실시계획 등에 광주광역시의 권한과 책임을 명시해 놓았다. 그럼에도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광주광역시가 무슨 일을 했는지, 역시 우리는 알지 못하고 있다.다시 문제는 민주주의이다. 보이지 않는 권력을 최소화시키고, 권력을 최대한 잘 보이게 해야 국책사업 진행 메커니즘의 오작동을 줄이고 합목적성을 추구할 수 있다. 문화전당의 권력을 잘 보이게 하려면 지역정부와 시민사회의 민주적 개입과 통제가 필요하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근거가 특별법 속에 마련되어 있다.
문화전당을, 그리고 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을 지금처럼 방치하는 건 아류 ‘박근혜·최순실’의 독재에 광주와 5·18민중항쟁이 신음하는 꼴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시절이다.
지방자치일보 jebo@jijac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