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민주혁명 ‘첫 투쟁지’는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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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4·19 민주혁명 ‘첫 투쟁지’는 광주”

“마산보다 3시간 앞서 ‘민주주의 장송 데모’ 있었다”



국가유공자 조계현씨, 3·15 57주년 기념식서 주장

“4·19민주혁명의 단초인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집단시위는 광주에서 먼저 시작됐습니다. 4·19혁명의 첫 투쟁지는 광주입니다.”
15일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광주시 주관으로 열린 광주 3·15의거 57주년 기념식에서 만난 4·19민주혁명 국가유공자 조계현(82·사진)씨는 “광주에서는 마산에 3시간여 앞선 1960년 3월15일 낮 12시45분께 ‘민주주의 장송(葬送) 데모’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조씨는 당시 전남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제4대 국회 민주당 이필호 의원의 보좌관으로 활동했었다. 조씨 등 민주당 안팎에서는 1960년 2월3일 선거일자가 확정공고되고, 3월14일까지 선거운동을 지켜보면서 부정선거를 우려해 왔었다. 그리고 3월15일 조씨를 비롯한 당원과 시민들은 당시 신안동 등 70여곳의 투표소에서 부정선거를 현장에서 목격했다.
그는 “당일 아침 민주당 참관인들이 투표소 입장을 거부당하는 등 부정선거가 목격되면서 민주당원과 학생 사이에서 군부대의 부정선거에 대한 폭로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후 당일 오후 당원과 시민, 학생 등 1200여명이 선거사무소에 집결하기 시작해 이를 계기로 1960년 3월15일 낮 12시45분께 광주시 동구 금남로3가(구 광주은행 본점)에서 ‘민주주의 장송 데모’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광주 3·15의거는 마산의 1차 3·15의거(3월15일 오후 3시30분) 보다 3시간여 빠른 것이며 이는 4·19혁명의 원류가 광주라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조씨는 “이 같은 사실은 동아일보 3월15일자 석간과 같은 날 한국일보 석간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며 “지난 20여년 간 많은 역사적 자료들이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광주가 첫 투쟁지라는 사실은 그동안 나는 물론 4·19혁명 학자들과 여러 단체에서 수없이 제기해왔지만 광주와 광주시민들이 이를 지키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나를 포함한 우리의 잘못이 크다”며 “이 같은 이유로 광주에 세워진 4·19혁명 50주년 기념표석에 3·15의거 표기가 누락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조씨는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의식하지 못하고 교훈도 얻지 못하면 시대와 나라의 중심에 설 수 없다”며 “광주3·15의거가 4·19혁명의 원류이며 5·18광주민주화운동의 기맥인 것을 우리 역사는 기억해야 하고 이는 곧 광주와 전남의 긍지이자 자부심이다”고 말했다.

강용운 yongpresser@jijac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