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감찬 장군의 얼이 서린 나주 심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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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 장군의 얼이 서린 나주 심향사

강감찬 귀주대첩 이후 국찰 승격, 천년 호국 보은 사찰로 자리매김 …보물 50호 고려 초기 3층석탑, 보물 1544호 아미타여래좌상도

▲나주시 대호동에 위치한 심향사 전경


▲극락보전 속에 숨어있는 건칠불상인 보물 1544호 아미타여래좌상


▲거란을 물리친 귀주대첩 이후 현종 몽진 상황과 강감찬 장군의 기록이 적힌 비


세월이 빠르게 변하고 급박하게 변해가는 현대사회에서 새 것이 좋다지만 그래도 산 속에 숨어 있는 천년고찰만큼은 그 당시의 기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마음의 여유를 주곤 한다.
빠른 현대생활 속에서 도시인들이 잠시나마 마음의 여유를 찾고,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해 산 속에 숨어있는 천년사찰은 최고의 ‘힐링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현대인들이 천년고찰을 찾아가는 것은 단순하게 재미만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있던 속세의 더러움을 씻으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잘 포장된 넓은 길을 올라가는 것보다는 산 속에서 울려대는 새소리와, 물소리, 코끝을 향긋하게 자극하는 풀냄새 등을 온 몸을 통해 느끼길 원한다.
그러나 요즘 옛 세월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사찰을 찾아보기는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너무 화려하게 꾸며진 단청은 오히려 인위적으로 느껴지고 규격에 맞게 잘 다듬어진 통나무와 시멘트 건물에서는 좀처럼 세월의 기품이 서린 느낌을 받을 수 가 없어 아쉬울 뿐이다.
마음의 여유를 찾아 최고의 힐링 장소를 찾으려는 사람이라면 나주시 대호동 금성고등학교 끝 자락에 위치한 심향사에 한번 다녀오면 잠시나마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천년고찰 심향사…거란 침입 이후 국찰로 승격= 지난 8일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씨 속에서도 천년의 세월을 품은 최고의 사찰이자, 강감찬 장군의 얼이 서린 심향사를 찾아갔다.
심향사는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미륵원’이라는 이름으로 세운 절로, 고려 현종 2년인 1011년거란이 침입하자 현종이 이곳 나주로 몽진해 와서 나라의 평안을 위해 기도를 올린 호국 절로 문헌에 기록돼 있다.
즉, 고려를 세운 왕건이 나주를 정벌한 이후 이 지역의 호족인 오달현의 딸인 장화황후와 결혼해 혜종을 낳았다.
이후 세월이 지나 고려 건국 후 수십년 뒤 거란이 침입하자 현종은 외갓집인 나주로 피신해 와 이 지역에 10일간 머물게 된다. 이후 현종은 이 절을 찾아 미륵불의 사상을 바탕으로 매일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기도를 올렸다. 거란의 침입을 막은 강감찬 장군도 귀주대첩에서 승리 한 후 이 지역을 관리하고 살펴보는 일을 맡게 되는 등 거란전 이후 절 규모는 더욱 커지게 됐다.
이후 심향사는 미륵원에서 심황사, 심왕사로 이름이 바뀌었고, 임금이 이 절의 대법회에 참여하는 국찰로 변해갔다.
요약하자면 신라시대 때 창건한 심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로 옛 이름은 미륵원이라 불리웠고, 신왕사, 신황사로 불리웠다가 현재의 심향사로 된 것이다.
하지만 몇몇 건물을 제외하고는 최근에 다시 재건되고 증축돼 고찰의 느낌이 많이 퇴색된 게 사실이지만 미륵전 앞을 지키고 있는 커다란 모과나무와 팽나무만이 심향사의 긴 세월을 묵묵히 말해주고 있다.
▲ 보물 50호인 고려초기 3층석탑 만나볼 수 있어= 심향사 입구 문턱인 일주문을 좀 지나 위쪽에 위치한 범종루를 만났다. 이후 범종루 위쪽에 있는 돌 계단을 천천히 올라가면 보물 50호인 고려 초기의 3층 석탑을 만나보게 된다. 현재 심향사에는 보물 50호인 3층석탑과 보물 1544호인 아미타여래좌상이 남아 있다.
원래 나주 북문 밖에 있던 것을 1915년 옛 나주군청 내로 옮겼다가 2006년 심향사 경내 미륵전 앞으로 다시 옮겨 놓은 탑이다.
상하 2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일반적인 모습으로, 높이 3m의 고려시대 초기의 석탑으로 알려져 있다.
기단에는 면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뒀고, 아래 기단에는 모서리에만 두고, 윗 기단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각각 조각을 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한 돌로 구성하고 있다. 위층으로 갈수록 몸돌의 비율이 줄어들어 전체적으로 날렵한 느낌을 준다.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다. 지붕돌은 두꺼운데, 밑면마다 3단의 받침을 뒀고, 윗면은 지붕돌의 처마 끝에 이르러 살짝 들려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극락보전 속에 숨어있는 건칠불상…보물 1544호 아미타여래좌상= 3층 석탑이 있는 곳에서 한 이십 여개의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극락보전에 이르게 된다. 극락보전 안에는 보물 제1544호인 건칠아미타여래좌상을 볼 수 있다.
“세상에 이렇게 멋진 불상이 이 극락보전에 숨겨져 있다니” 눈이 휘둥그래지고 입은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았다.
부처님의 은덕에 감복이라도 한 듯 대웅전격인 극락보전안의 불상은 평소에 마음 속에 그리던 천년고찰 불상의 풍경이었다.
이 불상은 고려시대 중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총 높이 132㎝, 머리 높이 47㎝, 머리 너비 29㎝, 가슴 너비 66㎝ 이며, 개금기가 적혀 있고 베에 칠을 한 건칠불상으로 알려져 있다.
즉, 찰흙으로 불상을 빚어 삼베를 덧입히고, 그 위에 옻칠을 한 다음 금물을 입힌 건칠불이다. 불회사와 죽림사 등 나주 지역의 건칠불 중 조형적 완성도가 가장 높을 뿐 아니라 현재까지 알려진 건칠불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체구는 듬직하고 균형 잡힌 편이고, 옷 주름 등 여러 기법에서 고려 후기의 불상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이후 현종의 거란침입 이후 다시 개성으로 옮겨간 내용과, 귀주대첩 승리의 주역 강감찬 장군의 업적이 적혀진 것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강원구 한중문화교류회 중앙회장은 “강감찬 장군이 다녀가고 석탑을 세운 것으로 추정 된다”며 “그 만큼 심향사가 국찰로 그 당시에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심향사 주지 성오 스님은 “고려 현종이 몽진한 이후 이 절은 고려시대 국찰 이었다. 현재 사찰 일원이 지방문화재로 등록돼 있다”며 “심향사 가치를 나주시민들도 알아주고 천년고찰의 위상이 서게끔 많이들 찾아 주셨으면 한다”고 밝혔다.
김종근 kgsanup@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