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믿겠다” 텅빈 모금함… “이성적 기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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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못 믿겠다” 텅빈 모금함… “이성적 기부해야”

이영학 사건·새희망씨앗 비리… 모금단체 불신 확산




“기부자, 감정 보단 꼼꼼히 따지는 ‘스마트 기빙’ 필요”
“단체 스스로 신뢰 높일 투명·전문성 키워야” 지적도


연말연시 기부의 계절이 돌아왔지만 시민들 반응은 냉랭하다. 기부단체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기부 포비아(phobia·공포증)’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 기부의 대부분이 ‘동정심’에 기반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스마트 기빙(smart giving)’ 기부 문화를 제안했다.
지난해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이어 올해는 이영학 사건과 새희망씨앗 비리가 터졌다.
중학생 딸 친구를 살해·유기한 혐의 등으로 구속수감된 이영학(35)씨는 10여년간 희소병을 내세워 기부금을 받아 대부분을 사적으로 쓴 혐의를 받고 있다. 소외계층 아동을 후원한다며 5만명으로부터 받은 기부금 중 126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된 새희망씨앗 회장 윤모(54)씨와 대표 김모(37)씨는 현재 재판 중이다.
정부·개인·단체 영역에서 기부 관련 ‘비리 3종 세트’가 터진 셈이다. 이 영향으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기부 심리가 얼어붙고 있다.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관계자는 “이영학 사건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기부금 사용에 대한 불신과 의구심이 많아져 기부가 줄고 있다”며 “일부 잘못된 사람들 때문에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는 대다수의 사회복지 기관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호소했다.
한 국제 NGO(비정부기구) 단체 관계자는 “이영학 사건 등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해 신경은 쓰고 있지만 서로 언급조차 꺼리는 분위기”라며 내부의 예민한 기류를 전했다.
이영학씨의 경우 TV프로그램 등을 통해 딸의 장애와 자신의 빈곤함을 강조하며 동정심을 자극했다. 그리고 이 수법은 주효했다.
전문가들은 기부자들이 동정심으로 기부하기보다는 능동적으로 투명한 기부처를 찾고 감시하는 ‘스마트 기빙’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강철희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부금, 후원금 사기 사건은 모든 사회에 다 있고 선진국에도 사례가 많다”며 “기부 동기가 감정적이면 TV에 나오는 이영학의 얼굴만 보고도 기부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강 교수는 “기부자가 감정을 넘어선 ‘스마트 기빙’을 하는 수밖에 없다”며 “품이 많이 들긴 하지만 조금 더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자기 뜻에 맞는 조직, 기부금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사회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조직을 선택하는 방식의 기부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비케이 안 한국기부문화연구소 소장은 “기부자들도 공부를 해야한다. 함부로 기부를 하는 게 아니고 깐깐하게 기부를 해야 한다”며 “우리 사회에 기부에 대한 감시망이 없다. 기부자가 믿고 주는 수밖에 없다. 기부자 스스로 ‘기부하고 끝’이 아니라 돈이 잘 쓰였는가, 왜 기부금에 대한 보고가 없는가 따져야 한다”고 충고했다.
모금 단체들 스스로 투명성 제고를 위한 노력을 해야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 소장은 “기부자들은 수혜자에게 100% 돈이 가는 것을 원하지만 현실적으로 기부 과정에서 지출되는 비용이 있다. 그 비용조차 모두 공개하는 게 맞다”며 “그러나 투명하게 공개하고 절차를 감시하는 것까지 돈이 드는데 우리나라 기부 단체들은 열악하다. 게다가 기부단체의 역사가 짧아 아직 전문성도 떨어져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산 내역을 정기적으로 보고하고 있는 비영리단체 굿네이버스 관계자는 “여러 사건들이 이어지면서 기부금의 용처에 대한 문의가 지속적으로 들어왔다”며 “규모 있는 단체들은 계속 온라인 홈페이지와 우편물 등을 통해 후원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홍정기 jebo@jijac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