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호프'는 알리면서, '노동자의 죽음'은 어디까지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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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군

[기자수첩]'호프'는 알리면서, '노동자의 죽음'은 어디까지 왔나

-사망사고 10일…수사는 진행 중인데 군민이 듣는 소식은 관광 홍보뿐
-지역 브랜드도 중요하지만 생명과 안전이 행정의 첫 번째 메시지여야

김기준 기자
[지방자치일보] 지난 7월 25일 해남 황산면의 한 농업현장에서 태국 국적의 30대 외국인 농업노동자가 폭염 속에서 쓰러져 끝내 숨졌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왜 이런 사고가 발생했는지, 막을 방법은 없었는지,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역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사건이었다.

사고 다음 날 해남군은 휴일임에도 군수 주재 긴급회의를 열고 '현장 행정 강화', '외국인 근로자 안전관리 재점검', '폭염 대응 강화' 등을 발표했다.

그러나 기자가 취재한 현실은 달랐다.
당시 해남군은 황산면을 비롯한 농촌 현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가 얼마나 되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법적으로 계절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직접 관리 대상이 아니라는 설명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폭염 속 생명을 지키기 위한 행정은 법적 구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기자는 지난 7월 27일 기자수첩을 통해 '현장 행정 강화'라는 구호가 현장의 실태 파악 없이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렀다.
경찰은 아직 부검 결과를 기다리고 있고, 고용노동부 역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 사고의 원인도, 책임도 아직 최종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 사이 해남군이 가장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는 소식은 영화 '호프(HOPE)' 촬영지를 활용한 관광 프로젝트다.

물론 관광산업 육성은 지방정부의 중요한 역할이다. 영화 촬영지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려는 정책 자체를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행정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지역 브랜드를 알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지역에서 발생한 중대한 산업재해와 외국인 노동자의 사망사고 이후 어떤 점검이 이뤄졌고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군민에게 설명하는 일 또한 결코 가벼울 수 없다.

군민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단순히 부검 결과만이 아니다.
사고 이후 농업 현장 안전점검은 어떻게 이뤄졌는지, 폭염 속 외국인 노동자 보호체계는 어떻게 보완됐는지, 관리 사각지대는 어떻게 줄일 것인지에 대한 답이다.
행정은 회의를 여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것으로도 완성되지 않는다.
현장을 알고, 현장을 바꾸고, 그 결과를 군민에게 설명할 때 비로소 현장 행정이라는 이름이 어울린다.

영화 '호프'는 해남을 전국에 알릴 수 있다.
하지만 태국인 노동자의 죽음은 해남 행정이 다시는 반복돼서는 안 될 과제를 남겼다.

지역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관광 프로젝트와 지역의 현재를 돌아보는 생명 안전 대책은 서로 경쟁하는 가치가 아니다. 오히려 함께 가야 한다.
관광도 중요하다.

그러나 생명은 언제나 그보다 먼저다.
해남군이 군민들에게 가장 먼저 들려줘야 할 소식은 영화 흥행이 아니라, "사고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가"에 대한 답이어야 한다.
김기준 기자 jebo@jijac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