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 출신 비전향 장기수 북송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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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광주·전남 출신 비전향 장기수 북송 추진

양심수후원회·민주화실천운동, 전국 18명 송환 추진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광주본부 등이 지난 7월25일 오전 광주 동구 YMCA 백제실에서 ‘장기 구금 양심수 서옥렬 선생 송환추진위원회’ 대표자회의 결성 기자회견을 열고 ‘남북 화해와 인도·인권적 차원에서 광주지역 유일한 비전향 장기수 서옥렬(90)씨의 북송을 추진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광주·전남 출신의 비전향 장기수는 3명이며, 전국에서 총 18명의 비전향 장기수가 2차 북송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일 양심수후원회 등에 따르면 광주에 거주하거나 전남에 본적지를 둔 비전향 장기수는 서옥렬(90)씨, 양원진(89)씨, 박정덕(88·여)씨 등 3명이다.
1927년 전남 신안군에서 태어난 서씨는 6·25한국전쟁 당시 고려대 경제학과를 중퇴하고 월북, 인민군에 입대했다.
1961년 북한 공작원으로 남파, 고향을 찾았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 민주질서에 어긋나지 않게 살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29년 만인 1990년 9월 출옥했다.
사상 전향(공산주의를 버리고 자유대한을 선택한다는 선언)을 강요하는 고문 후유증으로 왼쪽 눈의 시력을 잃었고, 거동이 불편한 상태다.
광주 북구의 한 임대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으며 북한에 있는 아내와 두 아들을 만나는 게 서씨의 마지막 소원이다.
신안군 지도읍에서 태어난 양씨도 목포 문태중학교를 졸업한 뒤 1945년 3월 일본에 강제 징용됐다가 46년 5월께 귀국했다.
그는 무안군 인민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아버지를 따라 전북 지역에서 피신 생활을 하다 한국전쟁 때 인민군에 입대했다.
양씨도 1959년 간첩으로 남파, 신안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돼 1988년 12월21일까지 옥살이를 했다.
장기수 전향 공작 과정에 당한 고문 후유증으로 몸이 성치 않은 양씨는 광주·서울 지역 경비업체, 수산물 가공공장 등지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왔다.
보호감찰법에 따라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했고 주거 제한까지 받았다. 그는 통일 운동을 펼치며 송환을 바라고 있다.
지병으로 요양원 생활을 하고 있는 박씨는 전남 곡성이 고향이다.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에서 빨치산의 일원으로 활약하다 1954년 국가경비법 위반 혐의로 붙잡혀 1959년 2월까지 수감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심수후원회·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등은 이들을 포함, 총 18명의 송환을 추진하고 있다.
광주지역 서옥렬 선생 송환추진위원회·전국 각지 단체와 연대해 통일부 장관 면담, 온·오프라인 송환 청원운동 등을 펼친다.
지난달 기준 단체가 파악한 송환 희망자는 19명이었으나, 지난 1일 대구에 살던 비전향 장기수 박재원(86·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20년 2개월 투옥)씨가 지병으로 숨졌다.
양심수후원회 관계자는 “지난해에만 비전향 장기수 4명이 숨졌고, 18명도 옥고를 치른 후유증과 고령으로 질환을 앓고 있다”며 “하루빨리 이들을 가족들이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신념의 고향으로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장기수 송환은 6·15공동선언 이행, 인도주의 실천, 남북관계 발전·자주 통일의 계기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다양한 송환 촉구 활동을 펼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양심수후원회는 2000년 9월 비전향장기수 63명을 고향에 보내는 작업을 추진한 바 있다.
김형준 jebo@jijac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