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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기념재단에 사진물·일기 기증 의사 밝혀와
당시 도청서 군인 움직임 번역해 시민군에 전달
영화 ‘택시운전사’를 계기로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외신기자들의 헌신적 활동이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당시 외신기자들에게 ‘광주의 진실’을 알리며 시민군과 생사 고락을 함께 나눈 50대 미국인이 ‘5월 광주’에 관한 집필작업을 진행 중이어서 관심이다.
주인공은 37년 전 미국평화봉사단(Peace Corps)의 일원으로 광주에 머물며 ‘5월 광주’의 참상을 경험한 데이비드 돌린저(64·한국명 임대운)씨이다.
미국 동북부 메사추세츠주의 한 의료분야 연구개발회사 임원으로 활동해온 그는 28일 5·18기념재단 전 간부에게 보내온 페이스북 서신을 통해 “새 대통령 취임과 영화 개봉으로 이제 광주의 진실될 역사가 바로 쓰여질 시간이 됐다”며 “저 역시 80년 당시 보고 경험한 것들을 토대로 책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내 스스로도 당시의 경험과 직접 목격한 수많은 죽음, 잔혹함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5·18 트라우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앞서 그는 지난 2008년, 한국인 동료 오모씨를 통해 “죽고 나면 화장해 그 재를 몇몇 장소에 뿌리기로 했는데 그 중 하나가 5·18묘지가 됐으면 하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라고 5·18기념재단 측에 e-메일로 밝혀오기도 했다.
그는 계엄군의 유혈진압으로 총상 또는 자상(刺傷)을 입고 신음하는 시민들과 오열하는 유족 등 ‘80년 광주의 슬픔’을 담은 사진물과 일기도 기증할 의사를 밝혀왔다.
돌린저씨는 매년 5·18이 돌아오면 회사 사람들에게 직접 한국음식을 대접하고 ‘그 날의 진실’을 알리며 눈시울을 적시곤 했다고 오씨는 전했다.
의대를 나와 미생물, 면역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돌린저씨는 1978년 4월 평화봉사단원 자격으로 한국에 들어와 5·18이 있기 전까지 2년간 전남 영암보건소에서 결핵통제 요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던 중 80년 5월 ‘당초 일정을 1년 앞당겨 끝내 달라’는 상부 지시를 받고선 광주의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게 된다.
광주로 올라온 그는 5월16일 평화적 촛불행진과 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와 민주인사 예비검속, 학생 연행, 18일 계엄군에 의한 전남대생 등교 저지와 공수부대 유혈 진압 등 믿기지 않는 상황들을 뒤로 한 채 19일 오전 근무지인 영암으로 내려왔다.
온통 광주 생각뿐이던 그는 사흘 뒤 석가탄신일에 다시 광주로 향했다. 돌린저씨는 광주행 대중교통이 전면통제되자 일단 나주까지 버스로 이동한 뒤 4시간을 걸어 24㎞ 가량 떨어진 광주로 진입했다.
그러나 ‘해방구 광주’는 이미 공수부대가 활개치고, 시민들이 무장에 나서는 등 전쟁터로 변했고, 도시 곳곳에는 계엄군의 조준사격과 총검에 쓰러진 무고한 주검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긴박한 상황 속에서 그는 매일매일 일기 쓰듯 피로 물든 광주를 기록해 5·18 외신 기자들의 ‘귀와 입’ 역할을 자청했고, 동료 봉사단원 2명과 함께 전남대병원과 금남로 길거리를 누비며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외부에 알리는데도 주력했다.
제2차 범시민궐기대회가 열린 24일에는 ‘5·18 최후 항전지’인 전남도청에서 시민군과 함께 밤을 지새며 라디오를 타고 영어로 전해지는 군인들의 움직임을 시민군들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그는 항쟁 이후에도 “피해자들을 돕고 싶다”며 1년 더 한국에 머문 뒤 81년 미국으로 돌아갔다.
미국 언론인 돈 오버더퍼가 쓴 ‘두 개의 한국(THE TWO KOREAS)’과 미국 한반도정보서비스넷(KISON) 이흥환 연구원이 쓴 ‘미 비밀문서로 본 격동의 80년대’에서도 돌린저씨의 이같은 활동상은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
강춘성 jebo@jijace.com
2026.10.17 (토) 1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