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한사 복원해야
검색 입력폼

마한사 복원해야

임영진(전남대학교 문화인류고고학과 교수)



지난 6월 1일에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가야사 연구와 복원에 대한 발언은 가야권에 대한 관심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김해, 고령, 함안, 창녕 등 관련 시군에서는 발 빠르게 개발 방안들을 내놓고 있고, 학계는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신중한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대통령의 가야사 관련 발언은 가야권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 발언의 근본적인 취지 때문이다.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에 비해 연구가 덜 이루어졌던 가야사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취지일 것이므로 마한사를 비롯하여 그동안 소외되었던 여러 지역사에도 해당될 것이다.
우리나라 고대사회는 고구려·백제·신라로 구성된 삼국시대로 표방되어 왔다. 이는 고려 인종 23년(1145)에 간행되었던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기인하는 바 크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삼국시대는 100년 남짓한 기간에 불과할 뿐이다. 562년까지 엄연히 가야가 있었고, 530년경까지는 전남 지역을 중심으로 마지막 마한도 존속하였다. 그 이전에는 옥저나 동예도 있었다. 이 때문에 6세기 중엽까지는 ‘열국시대’ 혹은 ‘다국시대’로 불러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지난 30여 년 동안 가야사에 대해서는 괄목할 만한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고대사회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고구려·백제·신라 외에 가야도 엄연한 고대국가였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활발한 고고학 조사, 연구와 문헌사 분야의 새로운 연구 성과 때문이다. 종래 일본이 한국 침탈의 역사적 명분으로 삼았던 ‘임나일본부’에 대해 기존의 식민지설을 철회하게 된 것도 이와 같은 가야사의 연구 진전에 따른 것이다.
가야사 연구의 진전에 비한다면 마한사 연구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마한은 진한·변한과 함께 삼국시대 이전에 삼한을 이루고 있었지만 진한이나 변한에 비해 연구자의 관심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진한이 신라로 발전하고, 변한이 가야로 발전하였던 데 반해 마한은 백제로 발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신라의 기원으로 진한이 연구되고, 가야의 기원으로 변한이 연구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백제의 기원은 고구려에서 찾아야 하였다. 백제는 마한에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온조로 대표되는 고구려계 이주민에 의해 건국된 후 마한을 병합해 나갔기 때문이며, 백제사에서는 마한사가 소홀하게 다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마한은 경기·충청·전라 지역에 걸쳐 있었지만 4세기까지 대부분의 지역이 백제로 편입되었고 마지막 마한에 해당하는 전남 지역은 더 늦은 시기까지 발전하였다. 이를 토대로 전남도에서는 ‘영산강 유역 고대문화권’ 개발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나주 반남고분군을 비롯한 고대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지역사를 규명하고 지역 발전을 위한 역사적 동력으로 삼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동안 정부의 국토개발 정책이 신라문화권, 백제문화권, 가야문화권 등 고대문화권을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영산강 유역 고대문화권’을 ‘영산강 유역 마한문화권’으로 바꿔 역사적 정체성을 보다 선명하게 표명할 필요가 있다. 최근의 조사·연구로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전남 지역이 530년경까지 독자적인 문화를 이루면서 발전하였고 그 역사적 실체는 마한에 해당한다는 것이 밝혀져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가야권에서는 전기 가야연맹의 김해와 후기 가야연맹의 고령을 중심으로 가야 유적의 조사·연구를 꾸준히 진행하여 왔다. 특히 김해에서는 23년째 가야사 학술회의를 계속하고 있고, 고령을 비롯한 여러 가야 소국의 중심지에서도 뒤질세라 지역사 규명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동안 이루어진 이 같은 노력은 결국 대통령으로 하여금 가야사 복원의 필요성을 거론하게 하였다. 만약 문재인 대통령이 가야사 문제만큼 마한사 문제를 잘 알고 있었다면 ‘약간 뜬금없는 이야기’로 가야사 복원만 당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 경남도를 중심으로 가야사 연구와 복원 사업이 활발해지는 것에 발맞추어 전남도에서도 더 적극적으로 마한사 연구와 복원 사업을 진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 6세기 초까지 마지막 마한 제국과 가야 제국이 긴밀하게 교류하였던 고고학 자료들이 두 지역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는 만큼 두 지역이 연계하여 구체적인 교류 내용과 그 배경을 밝혀 나가야 할 것이다.
가야 제국이 통합된 고대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신라에 병합된 것과 마찬가지로 마한 제국 역시 통합되지 못한 채 백제에 병합되어 나간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마한 제국과 가야 제국은 오히려 이상적인 자치·분권 사회를 이루고 있었던 만큼 지방자치와 분권이 강화되어 나가고 있는 지금의 추세 속에서 가야사와 함께 마한사를 연구하고 복원하는 것은 더욱 뜻깊은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방자치일보 jebo@jijac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