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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좀 뜬금없어 보이지만, 가야사 복원 꼭 해달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또 “가야가 경상남도를 중심으로 경북까지의 역사로만 생각하는데, 사실 섬진강과 광양만, 순천만, 심지어 남원 일대와 금강 상류 유역까지 유적들이 남아 있다. 가야사 연구 복원은 말하자면 영호남이 공동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익히 배워온 삼국시대는 사실 삼국시대가 아니다. 엄연한 국가였던 가야를 빼버린 왜곡된 역사였다. 어쩌면 사국시대 보다 해남 출신 윤내현 교수가 중국 역사서를 통해 밝혀냈던 열국시대가 더 정확한 역사인식일 것 같다. 열국시대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단군 고조선이 붕괴된 후 만주와 한반도의 수많은 거수국들이 각축을 벌이며 사국시대(가야 고구려 백제 신라)의 개막까지를 말한다.
필자의 고향은 남원이다. 남원에서도 남쪽인 섬진강을 경계로 곡성과 인접한 금지면이다. 금지면은 4.19 민주혁명의 도화선이 됐던 김주열 열사의 고향이기도 하다. 객지에서 향수병을 치유코자 시작했던 게 역사공부다. 당시 면의 역사를 알고 싶어 문화원에 연락했더니 면의 자세한 역사자료집은 만들어 놓은 게 없다고 했다. 사실 지방문화원은 인력이나 예산 등의 부족으로 면단위의 역사까지 아우를 수는 없다. 그 때 한 생각이 들어왔다. 무모하지만 내가 한번 만들어 보면 어떨까.
역사의 문외한이 면 역사책을 만든다고 닥치는 대로 자료를 수집해서 읽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남원지역은 통일신라 때 작은 수도인 소경이 있었던 곳이지만, 그 이전에는 마한과 백제의 영토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잊혀진 역사, 사라진 역사인 가야의 족적이 하나 둘씩 들어나기 시작했다. 가야가 남도 땅 섬진강 주변과 남원에 진출했던 시기는, 백제가 서기 475년 한성수도를 상실 후 웅진으로 수도를 옮긴 직후 백제의 약화된 국력을 틈타 순천, 광양, 남원 등 섬진강 수계권으로 진출했던 것이다.
면지역에 남겨진 가야의 유적은 금지면 택내리에 50여기의 성안고분군과 서매리에 3기의 고분군 그리고 임압리의 말무덤 등이 전북대박물관의 지표조사에서 확인됐다. 섬진강 수계권에는 광양 칠성리와 도월리 고분에서 가야 토기가 발견됐고 순천대 박물관의 순천 운평리 고분 발굴에서도 대거 가야토기가 확인됐다.
특히 운평리 고분군 출토 유물은 임나일본부설을 뒤집은 6세기 초의 유물들로 일본계 유물은 전무했다. 임나일본부설은 왜가 4세기 후반에 한반도에 진출해 6세기 중엽까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주장이다.
한때 개인 블로그에 가야와 일본이 교류했던 물증인 야광조개 국자 사진을 올린 적이 있다. 야광조개 국자는 고령지산동 44호 고분과 일본 가고시마현 아마미오시마 출토 유물과 같다. 그 글을 보고 창녕박물관에서 연락이 왔다. 가야의 영광을 담은 기획전을 준비 중인데 그 사진을 사용하고 싶다는 거였다.
대통령의 균형 잡힌 역사 인식에 의해 섬진강 수계권과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친 가야의 역사가 온전히 복원된다면, 섬진강 수계권에는 새로운 가야역사문화 루트가 만들어질 것이다. 가야는 철기문명을 소유한 진취적인 북망 유목민의 후예가 창업한 국가였기에 이천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남도에서 찬란한 가야의 역사와 재회하는 벅찬 감동을 맞을 것 같다. 이참에 당국에 부탁드린다면 지방 곳곳에 흩어져 손볼 틈 없이 망실돼가는 문화유적이 많다. 이 귀한 유적들에 대한 발굴이나 체계적 관리는 예산 관계상 어렵더라도 작은 안내 표지석이라도 하나씩 세워주는 게 선조가 남긴 유적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가 아닐까.
지방자치일보 jebo@jijace.com
2026.10.17 (토) 19:53













